“잘못한 것도 없는데 왜 사죄해야 합니까”
항의하고 버틸수록 침묵하시는 하나님
죽기만큼이나 싫었던 일
5개월 공부하고 1개월 휴가 얻어 교회를 6개월이나 비우고 이런 기회를 가지는 것을 아는 사람들이 ‘교회는 어떻게 하고 그런 용단을 내렸느냐?’ 또는 ‘교회를 그렇게 오래 비워도 괜찮으냐?’는 부러움과 염려를 많이 해주셨다. 그럴 때마다 대답은 ‘하나님의 교회, 하나님께서 잘 하실 것입니다’였다. 수년 전부터 가고 싶었지만 하나님께서 허락지 않았고 교회 스태프들도 마땅치 않게 생각하곤 했다. 나도 마음놓고 교회를 비울 수 없었다. 18년 동안 몇 번 가지지 못한 휴가, 아마 내 잘못이었을 것이다. 그때는 교회를 비우면 분명히 무엇인가 표가 났다. 영적으로, 인격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평신도 지도자들이 교회의 중요한 부분을 맡아서 섬기고 있다면, 섬기기보다는 주장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보다는 자기의 경험, 다른 교회에서 잘못 배웠던 것을 교회생활의 정도로 고집한다면 목회자가 교회를 비우기 어렵다.
그러나 우리 부부가 비운 동안에 오히려 온 교회가 교역자를 위해서 진정 사랑으로 뜨겁게 기도하는 것을 나가서 더 절실하게 알게 되었다. 제직들과 온 교우들이 더 큰 책임감을 가지고 하나님과 교회를 섬기고 있었고 서로를 더욱 사랑하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비운 기간에 서로의 필요를 더 깊이 새겨주신 것 같다. 이들에게 하나님 아버지의 놀라우신 은총이 대대로 넘치기를 빈다. 특별히 이 기간 동안 주말 목회를 담당한 김영태 전도사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이렇게 참여한 12주간의 찬양(학교에서는 찬양을 Worship: 예배라고 한다)과 강의시간마다 내려주시는 은혜는 우리 모두를 바꾸어 놓았다. 이 과정을 마친 후에는 처음 사람이 아니었다. 이렇게 말해도 과장이 아닐 것 같다.
내가 체험한 WYAM의 특징은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는 것이다’라고 말하고 싶다. 물론 이 말이 성경적 계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와 깊이 사귀기를 원하신다는 전제에서 나오는 것이다. 기록된 성경으로, 양심을 통하여, 그리고 사람들과 사건들을 통하여 말씀하신다. 단순히 말씀을 듣는다는 어떤 종교적인 매너리즘이 아니라, 인격적인 사귐을 말한다. 결국 성도의 경건이나 영성은 그가 얼마나 노력하고 수련하느냐에 달린 것이 아니고, 아버지 하나님과 얼마나 인격적으로 깊이, 친밀하게 사귀면서 에녹처럼 인생의 걸음을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다. 분명히 이런 삶은 그에게 변화를 가져온다. 이런 삶을 살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에 순종해야 교제가 계속되고 깊어진다. 어떤 때는 하나를 순종하지 않으면 다음 것을 말씀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의 음성을 더 잘 듣기 위하여 성경을 많이 읽으려고 노력했지만 한 달에 신. 구약을 한 번쯤 읽었으면 좋겠다. 한 주간에 440페이지를 읽으면 된다.
19년째 한미교회를 섬기고 있다. 그 동안 사랑을 나눈 귀한 분들이 너무 많이 있다. 매해 연말이 되면 한 해를 돌아보며 기도할 때마다 함께 섬기다가 헤어진 몇 몇 분들에게 먼저 용서를 빌라는 아버지의 말씀이 내 심령에 수 년 동안 들려왔었지만 무시하고 거절하고, 거역하고 말았다.
강의를 통하여 성령 하나님께서 내 마음에 강하게 말씀하셨다. ‘네가 나와 정말로 친밀하게 지내기 원하느냐? 속 깊은 것까지 나눌 수 있는 교제를 원하느냐? 그렇다면 순종하라’고 하셨다. 죽기만큼이나 싫었다. 자존심을 다 버리고 먼저 용서를 구하는 것은 허락되지 않았다. ‘그들이 한 것에 비하면 잘못한 것도 별로 없는데 왜 내가 잘못했다고 해야 합니까?’ 항의도 해보았다.
그러나 내가 항의하고 버틸 수록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침묵하셨다. 하나님께서 침묵하시기 시작하면서 가슴이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기쁨이 사라진다. 강의가 마음에 들어오지 않는다. 마음에 불평이 쌓이기 시작한다. 은혜 받으러 갔는데 심지어는 아무 것도 아닌 일로 아내와 다투기도 했다. 도무지 마음에 평안이 없다. 사람들 앞에서는 더 많이 웃고 평안한 것처럼 유쾌해 하지만 마음은, 영혼은 그것이 아니다. 1개월을 자신과 싸웠다.
강권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여덟 분에게 편지를 썼다. 충분히 사랑하지 못한 것을 용서하시라고 진정 간절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편지를 써 보냈다. 처음 만났을 때처럼 그렇게 순전하고 친밀하게 지내기를 원한다고 마음을 보여주었다.
놀라운 것은 그분들에게도 같은 마음을 주셨던 것이다. 어떤 부부는 각기 사랑과 은혜가 가득 담긴 편지를 써 보내주셨다. 한 분은 벌써 몇 년 전에 나에게 화해의 편지를 보내셨던 것을 언급하시면서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혜와 사랑으로 관계가 이미 회복된 것을 선포하셨다. 할렐루야! 또 다른 분은 부부간에 오래 전부터 목사님 사모님과 함께 이런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는데 목사님 사모님이 준비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염려 때문에 나누지 못했다고 하시면서 희귀한 선물까지 동봉해주셨다. 돌아오면 자기 집에 초대하여 함께 식사하면서 전에 나누었던 사랑을 나누자고 하셨다. 한 분은 멀리서 전화로 격려해 주시고 말씀을 나누어 주셨다.
하나님과 함께 사는 자에게는 이런 영성이 있게 된다. 하나님과 함께 사는 자는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게 된다는 것을 배웠다. <계속>
문홍국 목사 <한미장로교회>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