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빛 가을 햇살이 슬그머니 문턱을 밟고 들어와 방안에 앉는다.
집안이 다 화안 하다. 벽에 걸린 그림 한 점을 깊이 들여다보며 그 속으로 빠져들어 상상으로 노닌다. 아 그 달콤한 상상.
그림 속의 계절은 풀꽃 향기로 가득하고 길가엔 내 유년의 나이처럼 여리고 어여쁜 진분홍 패랭이꽃 한창이다. 이따금 낡은 풍금소리 같은 바람 지나가는 소리 들리고, 그 맑은 바람 실비단 목도리처럼 걸려 있는 나뭇가지 위에 평화롭게 앉아 있는 새 한 마리, 젖빛으로 풀리고 싶은 고즈넉한 여름 저녁 속으로 휘파람 불며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소년, 누구였던가? 어릴 적 내 첫사랑의 그 아이인가? 아, 나는 또 왜 공연히 가슴이 뛰는가?
나도 슬그머니 내 방안으로 걸어와 앉아 있는 가을 햇살처럼 저 그림 속으로 들어가 노닐고 싶다. 그 아이와 함께 화관을 만들어 내 긴 머리 위에도 예쁘게 쓰고 꽃반지도 만들어 끼고, 그 아이 자전거 뒤에 앉아 두 팔로 그 아이 허리 꼬옥 잡고 등에 가만히 얼굴 묻고 싶다. 그 등뒤에서 그 아이의 낮은 휘파람소리도 듣고 숨소리도 느끼고 싶고 달리는 자전거에서 심호흡하며 빠르게, 천천히 지나가는 풍경들도 가슴속에 담고 싶고 또 어느 날, 문득 전화 걸어와 "나야" 한마디하고는 말없이 한참을 울다 전화 끊고는 소식이 없던 그 아이의 슬픈 사랑도 곱게 담고 싶고.....
아, 시간이 어느새 이렇게 그림 속의 저 자전거처럼 빨리 굴러 왔는지. 지금 이렇게 늦은 세월에 그 아이 다시 만나 사랑 할 수 없을지라도 그리움을 알리는 하얀 깃발 하나로라도 낮 달처럼 떠 있게 하고 싶다. 시간은, 가장 깊은 슬픔도 길들이는 구나.
고맙고도 눈물 도는 이 가을날, 툇마루에 앉아 함께 볕 바라기하며, 아무 말 없이 그저 바라보며, 맑은 소주 한잔 할 친구, 그런 그 친구 지금 어디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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