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사색의 계절이다. 누구나 붉게 물든 나뭇잎이 하나씩 떨어지면 무엇인가 숙연해지면서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된다. 요즘처럼 세상일들이 어수선하고 경제적으로 어려워지면 지나간 세월에 대한 허전함이 더한다. 그러나 어쩐일인지 한인들은 사색을 애써 외면하는 것 같다. 살아가는 일들이 언제나 조바심의 연속이고 무엇엔가 쫓기는 듯한 불안정한 생활이고 보면 사색은 한낱 사치에 지나지 않는가 보다.
사람이 사색하는 일을 포기한다는 것은 인간이 동물에 접근해 간다는 비극이라고 했다. 사색은 인간의 의지와 의식적인 노력으로써 인간의 행위와 그 결과에서 초연히 서 있을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사색을 통한 정서의 복원이 필요하다는 것을 누구나 공감하는 세상이다. 사회적인 조건의 변화는 인간의 성격도 변하게 만들며 이 성격은 바로 불안이나 또다른 욕구의 충동으로 정서의 고갈을 의미한다. 그래서 우리는 독서가 필요하고 사색이 필요한 것이다.
자연은 언제고 무한한 영감을 주고 경외심을 불러 일으키지만 특히 가을의 아틀란타는 마음을 송두리째 빼앗아 간다. 11월 중순에 접어들면서 아틀란타는‘만산홍엽’ 그 자체이다. 나무와 숲이 울창한 대도시 아틀란타만이 갖는 특별한 축복이기도 하다. 언덕길을 달리면서 멀리 바라보이는 단풍의 행렬을 보노라면 ‘만추’의 가슴 뿌듯함과 동시에 자연에 대한 형용할 수 없는 감흥으로 ‘살아있어 행복하다’는 말이 저절로 뇌까려 진다.
아직도 푸른 빛을 띄고 있는 이파리와 질투를 느낄만큼의 노랑색, 눈부신 황금빛 오랜지색, 석양을 닮은 주홍색, 그리고 사이사이 부끄럼 많은 여아의 얼굴로 빼꼼히 고개를 내밀고 있는 선홍빛 단풍들의 조화는 짧은 어휘와 표현력에 대한 한계를 드러내게 하지만 그것이 주는 희열과 설렘을 어찌 막을 수 있을 것인가.
어느 코스로 차를 달려도 가을의 아틀란타는 아름답기만 하다. 특별히 바람이라도 불라치면 색색의 단풍이 햇살을 받아 눈부신 낙조의 그것을 연상케 하고 바다를 꿈꾸게 한다. 낙엽이 수북히 깔린 호젓한 길에서 차를따라 바람처럼 달려가며 흩어지는 낙엽의 모습은 마치 재잘거리는 어린아이들의 앙징스러움 같다.
비바람이 휩쓸고 지나간 하늘은 금방 쏟아질 것 같은 바다처럼 더욱 푸르고 한층 높아졌다. 세상의 번잡함과 규격화된 자유, 돈으로 환산되는 질서와 화려함 따위를 벗어 던지고 이 아름다운 풍광에 한번 풍덩 빠져 자연으로 돌아가 봄은 어떨까. 가을의 서정적이고 낭만적인 모습에서 고향의 아늑함이 배어 있는 그리움의 원천을 느끼게 되고 가족의 소중함을 새삼 떠 올릴 수 있을 것이다.
만추의 자연은 안식과 평화로움, 그리고 무한한 정신적 자유를 가져다 준다. 우리가 조금만 시간을 내어 허리를 굽히고 자연과 친숙해 지면 땅과 나무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스쳐 지나가는 바람과 이름모를 새들과 눈을 맞출 수도 있다.
이 아름다운 가을에 자연과의 교감을 통해 ‘태초의 나’를 느껴보고 지금 내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점검해 보자. 가을에 흔히 사람들은 낙엽을 긁어모아 불사르고 그 재를 나무밑에 묻어준다. 이것은 새로운 나무의 식목이 아니라 이미 있는 나무를 북돋우는 거름이다. 가을의 사색도 이와 같아서 그것은 새로운 것을 획득하려는 욕심이 아니라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을 다짐하고 챙기는‘약속의 이행’이다. 가을에 갖는 우리들의 공허한 마음이란 기실 조급한 욕심이 만들어놓은 엉뚱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숨이 턱에 차도록 하루하루를 고단하게 보내며 우리가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 “욕심을 끊는 것이 목숨을 끊는 것보다 어려워서야 어찌 우리가 인간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며 나이 50이 넘어서야 자신을 돌아보게 됐다는 한 지인은 “이제 자신을 찾고 싶다”고 말한다. 그의 말이 가슴을 헤집고 들어옴은 무엇일까.
사실 조금만 욕심을 버리면 우리는 그만큼 풍요로움을 누릴 수 있다. 우리가 언제 자연과 동화되어 새들의 소리나 바람소리, 그리고 나무들 자라는 소리를 들어 보기나 했던가. 우리의 마음을 부드럽고 맑게 해주는 연주회나 영혼의 교감을 나눌 수 있는 전시회를 찾았던 적이 언제였던가. 기억을 더듬어야 할만큼 우리의 정서는 너무도 메말라 그 끝이 칼처럼 우리를 찔러대고 우리는 가시처럼 서로 으르렁 거리며 세상을 피폐하게 만들고 있지는 않은 지 돌아보게 된다.
해마다 가을이 되면 우리들은 추수라도 하듯이 한 해 동안 키워온 생각들을 거두어 보지만 금년 가을도 여느 해나 다름없이 손에 잡히는 것이 없고 공허한 마음은 뼈만 데리고 돌아온 ‘바다의 노인’ 같다면 우리의 일상은 수정되어야 마땅하다. 이파리를 떨구며 겨울을 준비하는 나무들을 보면서 인간은 무얼 그리 거추장스럽게 많이 가져야 하는지 그리고 왜 그렇게 많은 욕심에 묶여 살아야 하는지 생각하게 된다. 사실 욕심은 버릴수록, 마음을 비울수록 행복해지는 것이라 했다.
가을이 깊을대로 깊어졌다. 막차를 탄 기분이지만 그래도 아틀란타의 가을은 충분히 마음이 동요될만큼 아름답다. 한번쯤 눈을 들어 눈부시게 아름다운 가을을 보고 단풍의 바다 아틀란타에서 사색의 바다를 발견해 보자.
<편집·취재부장/ejlee@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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