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고 유기진 장로
은혜교회 김영진 사모
“유기진 장로님 맞지요? 이제야 만나 뵐 수 있게 되는군요”
자유를 찾아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38선을 넘은 지 53년만의 만남. 당시 3세였던 어린아이가 자신을 등에 업고 사선을 넘었던 80을 훌쩍 넘은 노인을 만나 지난 시간을 떠올리며 환한 웃음을 지었다. 4일 한인타운에서 극적인 만남을 가진 화제의 주인공은 유기진(86) 장로와 김영진(57·은혜한인교회 김광신 목사 부인)씨.
이들의 인연은 1949년 7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세브란스 의과대를 졸업한 뒤 평양 연합기독병원에서 인턴으로 근무하다 공산정권이 들어서면서 평양 제1인민병원 외과책임자로 근무하던 유 장로는 남한에 있던 첫 부인의 병세가 심해졌다는 소식을 듣고 월남을 결심했다.
동해주로 가는 열차에 몸을 실은 유 장로는 평소 알고 지내던 평양 정의여학교 교사 고몽애(99·서울에 생존)씨를 만나게 된다. 당시 고씨도 영진(3), 영주(5), 영희(7) 등 어린 딸들을 데리고 월남하던 중이었지만 곧 보안요원들에게 적발돼 끌려가게 되자 유 장로에게 세자매를 돌봐줄 것을 부탁했다.
38선에 도착한 날 밤, 비가 내리는 가운데 유 장로는 영진씨를 등에 업어 끈으로 묶은 뒤 나머지 두 아이의 손을 잡고 숲 속을 헤쳐 나가며 군견이 짖을 때면 땅바닥에 엎드리고, 주위가 조용해지면 다시 몸을 움직이기를 수없이 반복했다.
자칫 발견되면 총살당할 수 있는 위험의 연속이었지만 신기하게도 세자매중 누구나 울거나 말을 하지 않고 유 장로의 말을 따랐고 새벽이 밝아오면서 마침내 월남에 성공했음을 확인하는 순간 어린 자매들은 갑자기 찬송가를 함께 부르기 시작, 유 장로는 놀라게 만들었다.
이들은 서울에 도착해 헤어진 뒤 연락이 끊겨 지금껏 만나지 못하다가 시카고에서 함께 선교사업을 벌이고 있는 임마누엘 선교단 박상진 목사의 노력으로 이번에 감격스런 순간을 맞게 됐다.
유 장로는 “그때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믿어지지 않는다”면서 “아이들이 갑자기 찬송가를 부를 때는 감사한 마음과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수퍼파워가 존재하고 있음을 깨닫게 됐다”고 지난 시간을 떠올렸다. 그는 또 “내년에는 서울을 방문, 고씨를 만나겠다”면서 “오늘의 기쁨은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어머니와 열차안에서 헤어질 때 순간과 유 장로께서 나를 등에 업을 때 끈을 너무 세게 조여 아팠던 기억이 남아 있다”면서 “유 장로님을 만난다는 생각에 어제는 제대로 잠을 자지도 못했다”고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40여년전 미국에 이민와 시카고 에지워터 병원에서 전문의로 활동했던 유 장로는 한국 기독교계의 중요 인물인 유계준 장로의 8남매중 다섯째로 큰형 유기원 박사는 서울 국립의료원장을, 바로 윗형 유기천 박사는 서울대 총장을 지내기도 했다.
서울 오가며 이번 만남을 주선한 박 목사는 “유 장로는 부친의 뜻에 철저히 순종하며 근검절약 하는 생활이 몸에 베인 분”이라며 “불한 환경의 어린이를 돕는 등 그동안 가족도 모르는 많은 선행을 베풀어 왔다”고 소개했다.
<황성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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