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천년을 맞이하며 흥분을 감추지 못하던 때가 벌써 3년이란 시간 속으로 갇혀 가고 있는 2002년의 연말인데 그 때의 감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기억 속에서 점점 잊혀져버리고 이젠 까마득한 옛이야기로 들린다. 그렇게 세월이란 것은 멈추지 않고 흘러가고 있나보다.
해마다 연말이 되면 느끼는 것들이 있다. 새해의 시작과 함께 거창하고 화려한 일년의 계획을 세웠던 것에서 과연 얼마나 성취를 하였나를 보면서 후회와 반성이 끊이지 않는다는 것, 자고 나면 자라나는 새싹같이 한해 무럭무럭 성장하여준 아이들에게 감사하는 마음, 그래도 인간의 양심이 마르지 않았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구세군 냄비의 종소리 고아원 양로원에 마르지 않는 인적들이 있다는 것이다.
일년을 준비하며 자신과의 기나긴 싸움 속에 문학의 이상을 꿈꾸며 때론 밤을 세워가며 텅 빈 원고지위에 한 알 한 알 자신의 살점을 싣듯이 정성을 다한 옥고를 신춘문예에 투고하고 다시 단칸방에 돌아와 백열등을 밝히는 예비 작가가 있고, 지난 12년의 공부를 바탕으로 새로운 학문의 전당으로 오르기 위한 마지막 일년의 피나는 공부 끝에 대학의 진학을 위한 입시시험을 치르고 그 노력의 결실로 얼굴 가득히 미소를 머금는 수험생과 자신의 실수에 낙담하여 인생의 포기가지 몰고가는 수험생이 있고 모든 수험생들과 같이 한 해를 살얼음판을 걷듯이 살아온 우리네의 어머니 게시고, 온몸을 땀투성이로 언제나 그 땀 냄새가 떠나지 않도록 열심히 일하여 마침내 사글세방에서 전세방으로 또는 전세방에서 13평 남짓 작은 집이라도 내 집을 마련함에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우리의 아버지가 게시고, 한참 젊은 꽃다운 나이에 야간근무 연장근무로 생산현장에서 피로도 아랑곳하지 않고 잠을 거르며 일하여 매달 부운 적금을 연말에 동생의 학비로 혹은 고향 부모님에게로 선뜻 내놓는 우리의 젊은 근로자가 있지만, 그들 모두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서로를 위하여 더욱 사랑을 나누어주는 연말. 우리 삶의 아름다움을 다시 한번 느껴보는 시기에 그런 깨끗한 마음을 갖고 있지 못함에 내 자신을 부끄러워하고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는 우리의 겨울.
배불리 먹으며 따스한 방에만 살아온 사람에게는 너무나 어리석게만 보일지도 모르는 우리 서민들의 삶이지만 그래도 자족하며 그 속에서 행복해하고 작은 정성 작은 사랑일지라도 나를 필요로 한 삶이 있으면 흔쾌히 내어줄 수 있는 마음이 있기에 결코 고대광실에서 편안히 사는 사람들이 부럽지 않으며, 오히려 사랑과 정에 굶주리며가며 살아가는 그들의 ‘물질 속에 갇혀버린 인간성 상실’에 오히려 측은한 마음이 든다. 연말만 되면 나타나는 사람들. 생전 오지도 않던 사람이 갑자기 커다란 보따리 하나 들고 찾아와 고아원 아이들을 앞에 세우고 또는 양로원 할아버지 할머니들과 나란히 사진 한 장 딸랑 찍고 가버리는, 꼭 무슨 철만 되면 자신들의 이름을 내기 위해 티만 내는 그런 사람들이다. 그렇게 물건 하나 던져놓고 가면 천당 갈 줄 아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천당 자리도 번호표를 받아야 하지 않을까 쓸모없는 사람까지 다 가면 자리가 모자랄 것이니.
그래도 우리들의 겨울은 따듯하다고 나는 이야기하고 싶다. 추위가 더욱 기승을 부리면 부릴수록 우리의 사랑은 더욱 강해지고 작은 손을 마주 잡고 역경을 헤쳐나가는 우리의 가슴에는 항상 내일의 희망을 꿈꾸며 밝고 맑은 모습으로 살아가는 행복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오늘 이웃의 창에 어리는 우리 양심의 독은 바닥을 보이지는 않는지 한번 살펴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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