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 화. 수. 목. 금. 토. 일,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아무런 의미 없는 말들이 발빠르게 내 앞을 지나가며 한 주를, 한 달을, 한해를 만들고 그리고 결코 짧지 않은 내 삶보다 더 긴 시간, 시간을 만들어 냅니다. 하얀 벽에 걸린 마지막 남은 12월 달력 한 장이 쿨럭쿨럭 거리며 기침소리를 냅니다. 허파의 가장 깊숙한 밑바닥에서 울려 나오는 그 기침 소리는 내 가슴과 머리를 울리며 나오는 소리입니다.
살아가기 힘든 겨울밤,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내 자신의 꿈으로 내 생명을 양생해 가는 동면의 비굴함으로 들어가 있을 때, 기침소리는 바로 그 비굴한 겨울잠을 자고 있는 내 영혼을 깨우는 경고의 소리입니다. 비록, 아름답지도 않으며, 귀까지 윙윙거리게 하는 아픔을 동반한 소리이지만, 그것은 살아 있음의 소리, 바로 생명의 소리인 것입니다
그 옛날, 내 유년의 겨울밤, 건너 방 아랫목 구들을 울리며 문풍지 소리와 함께 들려오는 할머니의 기침소리는 바로 살아있음의 소리며, 내 영혼을 흔드는 낡은 풍금소리입니다.
늦은 밤 할머니의 간헐적인 기침소리를 들으면서, 톨스토이나 투르게네프와 같은 러시아 작가의 소설을 읽고 아주 인상적이었던 페치카 앞의 풍경을 상상으로 그려봅니다^^*
밖에서는 눈보라가 치고 바람이 불고, 그 페치카 곁에서 와인이나 위스키를 마시며 신과, 사랑과, 인생을 논하거나, 흔들의자에 앉아 파이프를 입에 물고 눈 내리는 창 밖을 바라보며 음악을 감상하는 모습들을...
그러나, 그 풍경 속의 달력에서는 기침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또한 페치카가 아무리 인상적이다 할지라도 할머니의 질화로만은 못합니다. 그 정겨움과 따스함이...
겨울 불의 그 따스함은 아무래도 몸만 아니라 영혼까지 따스하게 했던 우리의 질화로가 최고입니다. 구수한 찌개 뚝배기가 있던, 화로 속에서 할머니의 군밤과 군고구마가 나오던 다감했던 질화로는 시간 속에 묻혀 할머니의 기침소리와 함께 그 구수한 풍속은 사라져 전설이 되고 말았습니다.
할머니의 따스한 질화로가 그리운 이 겨울밤, 소유 할 수 없는 한 해가 사라져 가고 있음을 아쉬워하지 말고 우리 모두 깨어 있음을 위하여 목이 아프도록 허파가 울리도록 헛기침이라도 해 볼 일입니다. 쿨럭쿨럭 생명의 절규와도 같고, 근엄한 경고와도 같은 소리, 낡은 풍금소리로 울리는 그 영혼을 흔드는 기침소리를, 저 가엾은 어린 넋 미순이와 효순이를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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