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동품 애호가 나관섭씨
보통 사람들의 한국에 대한 관심이 일요일 오후 소파에 벌렁 드러누워 리모트 컨트롤로 TV채널을 바꾸다가 귓전을 때리는 ‘Korea’란 단어에 채널을 고정시킬 정도라면, 글렌데일의 나관섭(49)씨가 가진 우리 것에 대한 관심은 본능적 이상이다.
시간 날 때마다 패사디나 골동품 점을 뒤지며 그림, 우편엽서, 우표, 책 등 한국 냄새가 배긴 물품은 모조리 사 모으고 있는 건축가 출신의 나씨.
82년 도미한 뒤 정신없이 앞만 보고 달리던 그는 어느날 ‘Tomb, King Taejo’란 검은색 글씨가 뒷면에 적힌 비바람에 닳아 뭉툭해진 깨진 기와 조각을 골동품상에서 발견했다.
이국에서 우리의 역사적 사료들이 떠돌아다니는 것이 못내 마음에 걸렸다. 그때부터 나선 골동품 수집. 구한말 멋쟁이 새신랑의 모습이 담긴 유명 프랑스 화가의 그림, 러일전쟁 중 러시아 병사에게 지급된 것으로 추정되는 한국 안내 책자, 고종 황제의 초상이 새겨진 우편엽서, 1890년대 역미사절단으로 추정되는 도포 입은 사람 5명이 충정관을 쓰고 호텔 로비에서 찍은 알부민 프린트 사진, 동부 로아녹(Roanoke)대학에 유학한 것으로 알려진 의친왕 이 강이 사모관대를 입고 찍은 사진 등 지난 세월동안 모아온 소장품은 200여점. 웬만한 한국 전문가가 개인적으로 소장한 작품 수를 웃돈다.
하지만 소장품을 모으는 과정이 만만치는 않았다.
진품과 가짜를 구분하는 식견이 부족해 터무니없는 가격에 전문가를 자처하는 백인으로부터 백자를 구입했다가 낭패를 보기도 했고, 감정을 해주겠다는 한인에게 고가의 고려청자를 맡겼다가 이를 분실하기도 했다. 또 열렬한 후원자인 부인 경애(47)씨가 ‘변심하기 전’까지 주던 눈치. 고난 속의 수집 활동이었다.
속지 않으려 틈틈이 한 공부 덕분에 나씨는 이제 웬만한 ‘물건’은 한 눈에 알아보는 안목이 생겼다. 나씨는 자신이 아끼는 소장품 중의 한 점인 1794년 포르투칼에서 제작된, 동해를 ‘Corea Sea’로 적은 한일 지역도를 보여 주며 진품임을 확인할 수 있는 노하우를 소개하기도 했다.
나씨는 한국 골동품 수집을 통해 “사라져 버린 우리의 고향”을 모은다. 이제는 찾아볼 수 없는 물품들을 수집하며 그 속에 담긴 “역사와 추억”을 모은다는 것이다.
한방 가득 찬 소장품 중 얼마전 구입한 30년대 지리산 어귀의 한 농가 그림을 골라낸 나씨는 “사라진 한국의 유산을 소유한다는 즐거움과 모은 것을 다시 꺼내 볼 때 되새김질 할 수 있는 추억은 단조로운 이민생활에서 오는 스트레스와 고통을 해소하는 엔돌핀”이라고 말하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김경원 기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