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모(歲暮)다.
차갑게 느껴지는 나목(裸木)들이 음습한 겨울날씨와 더불어 더욱 슬픈 빛으로 다가온다. 요즈음은 더욱 식욕이 없다. 시간이 가는 것도, 계절이 바뀌는 것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 김 노인은 옆에 있는 네발짜리 지팡이를 짚고 힘들게 몸을 세우며 육신이 한낮 쓸모없는 고기덩이 같다는 생각에 깊은 숨을 토해낸다.
오늘은 간호사가 오는 날이다. 일주일 간격으로 잠깐 다녀가지만 유일하게 시간을 정해 놓고 오는 손님이다. 김 노인은 버릇처럼 오늘을 기다린다. 혈압을 측정하고 이것저것 묻지만 모두 이해하기 어려운 것들 뿐이다. 허나 이제 그것도 시간이 지남에따라 익숙해져 대충 눈치로 잡는 요령이 생겼다. 김 노인은 그녀가 좋다. 갈색머리에 파란 눈을 가진 벽안(碧眼)이지만 그는 자신의 주름 투성이인 팔과 다리며 얼굴을 아랑곳 하지않고 만져준다. 따뜻한 그의 감촉이 좋고 정감이 그냥 하염없이 좋다.
“식사를 거르지 말고 비타민과 약을 제 때 복용하세요”라는 따위의 말은 바람처럼 지나갈 뿐이다. 딸 없이 아들만 셋을 둔 김 노인은 ‘저런 딸 하나만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본능처럼 일었다. 순간 김 노인은 자신도 분간하기 어려운 미묘한 감정에 휩쌓여 모든게 귀찮아 지고 말았다.
“안녕 계세요" 간호사의 서툰 우리말 인사가 허공을 바람처럼 메아리 칠 때도 김 노인은 석고상처럼 멍하니 초점없는 눈으로 죽음보다 더 깊고 고독한 외로움을 응시하고 있을뿐이다. 시동이 걸리고 그녀의 차가 멀어질 때 까지도 김 노인은 움직일 줄 몰랐다.
노인아파트에 입주한 후 9년을 이렇게 보내고 있다. 처음 얼마간은 다른 노인 부부들이 왔다가면 커다란 허전함을 느끼곤 했지만 지금은 외로움이나 그리움 따위도 없다. 지난 9년간 이런 감옥소 같은 생활에 익숙해져버렸고, 모든 의미를 상실한 지 오래다. 김 노인은 자신도 모르게 버릇처럼 뇌였다. “그만 죽어야 될텐데…”
박 노인은 그만 어리둥절 했다. 방안 구조가 갑자기 이상해 졌다. 무언가 여러 사람들의 낯선 음성이 바쁘게 지나가고 소독 냄새가 가득했다. “이제 정신이 드세요, 할아버지… 큰일 날 뻔 하셨어요."
박 노인은 그제서야 병실에 자신이 누워있다는 걸 알았다. “내가 어떻게 여기에…" 박 노인의 힘없는 물음은 두려움과 불안이 뒤섞여 거의 신음소리에 가까웠다.
“할아버지가 갑자기 쓰러지셔서 911에서 모셔왔대요. 생각 안나세요?"
박 노인은 그제서야 알 것 같았다. 희미하게 기억이 떠 올랐다. 평소 고혈압인데다 심장이 좋지 못해 수술을 받은 지 얼마되지 않았으며 인공심장으로 요사이 가끔 통증이 있었던 터였다.
목욕을 마치고 나오다 쓰러져 전화기를 들고 911을 누른 뒤로는 아무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냥 그렇게 죽을 수도 있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스쳐갔다. 박 노인은 차라리 그랬으면 좋았을거라는 생각을 했다.
“자식들한테 알려야지요."
박노인은 힘없이 고개를 가로 저었다. 지난번 수술할 때도 연락하지 않았었다. 가끔씩 들르는 친구가 뉴욕에 있는 큰 놈에게 전화했었지만 나중에야 집으로 전화 한 번 걸려와서 한다는 소리가 “조심하세요"였다. 달라스에 있는 둘째놈도 매반 한가지였다. 박 노인은 ‘이제는 또 누구의 신세를 져야 하나’ 하는 걱정이 앞섰다. 지난번엔 후배 부부가 밥이며 국이며 뒷치닥거리를 마다하지 않았는데…, 자신의 처지가 자꾸만 나락으로 떨어지는 기분이다.
박 노인은 죽기전에 고향 한 번 다녀오는 것이 소원이다. 선친 묘소에 절이라도 드리고 싶다는 거였다. 건강이 조금만 더 나아져도 가려고 비행기표까지 예약해 놓았는데 그만 이렇게 됐다고 눈물을 삼킨다. 자식들에게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내심은 누구라도 자신을 부축해서 고향에 다녀왔으면 하는거였다. 자식들과의 불화때문에 고혈압과 심장병을 얻어서 몇 년째 고생하며 혼자 지내고 있는 박 노인은 한국 최고학부를 나온 엘리트다. 그래서 그는 지금의 삶에 대한 자책감이 더욱 클 수 밖에 없다.
“인생에 실패한 사람이요. 무엇을 할 수 있겠소, 그냥 그날만 기다릴뿐이지…"
그의 말이 차가운 하늘가에 죽음같은 슬픈 메아리를 만들고 있었다.
인륜이 실종돼가고 진정한 행복의 가치척도가 무너져 무쇠처럼 차갑기만 한 세상이 겨울보다 더 시리게 다가온다. 가족들에게 느끼는 따뜻한 행복을 뒤로하고 죽음을 기다리듯 쓸쓸한 말년을 보내는 노인들을 보면서 오늘의 이 현실이 참담하고 슬프기만 하다.
한 해를 또 보내는 세밑이 되면 노인들은 더욱 외롭고 쓸쓸하다. 노인들은 외로움 그 자체로 존재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노인들도 외로움을 낯 설게 느끼고 외롭다고 말 하고 싶어하는 보통 사람들임을 우리는 왜 그냥 지나치려는 것일까. 노인들의 생활이 온통 무관심의 잡풀들로만 덮혀있는 ‘무덤’ 같다해도 지나친 표현은 아닌것 같다. 오늘날 노인들을 죽이는 것은 바로 외로움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떠나질 않는다.
<편집·취재부장/ejlee@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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