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간 정다운 ‘작은음악회’
LA 남쪽 소도시 세리토스의 한 공원 옆에 위치한 헬렌 황씨(46)의 아담한 2층집에서는 23일 밤 보기 드문 이색 송년 모임이 열렸다. 동네 한인 가족들이 꾸미는 ‘작은 음악회’다.
피아노와 바이올린, 기타, 때로는 하모니카가 등장해 클래식과 팝뮤직, 한국 가요 등 다양한 악기와 음악 장르가 연주된다. 한 동네 살고 있는 한인가정들이 자녀들과 아버지들을 위해 벌써 10년째 매년 연말이면 송년의 아쉬움을 함께 달래며 꾸미는 가족 음악 경연대회이다.
초등학생부터 대학생까지 어느 해에는 엄마와 아빠까지 출전해 자녀들과 멋진 음악을 연주하며 화기로운 분위기를 한껏 뽐내기도 한다. 학교 밴드에서 활동하거나 부모들의 극성에 끌려 악기 하나씩은 다룰 줄 아는 정도의 아마추어 실력이지만 음악회에서는 프로급 못지 않은 자세와 열정으로 분위기를 후끈 달군다.
올 출전자는 8가족. 40여명이 넘는 한인들이 조그만 응접실에 모여 아낌없는 박수로, 때로는 웃음으로 출전 가족들을 격려했다. 올해는 입소문이 퍼져 타인종 이웃들도 3~4명 눈에 띤다.
대형 태극기와 성조기가 내 걸리고 개회식에는 애국가와 미국 국가가 연주되며 제법 숙연한 음악회로 막을 올린다. 메달도 수여된다. 물론 1달러 짜리 대형 동전에 메달 분위기를 살려 집에서 만든 것이지만 가치로는 어느 것 못지않다.
음악회 시작은 엄마들의 ‘아버지 묶어두기’에서부터 출발한다. 연말이면 망년회다 크리스마스다 한껏 들떠 가족들을 외면하는 아빠들의 기분을 잠재우고 아이들에게도 송년의 의미를 새롭게 심어주자는 데 있었다.
헬렌 황씨의 남편 황봉오씨와 이웃 또는 아이들 학교 친구 부모로 알고 지내던 김종득씨, 이원익씨, 최진석씨등 4가족이 황씨 집에 처음 모여 가족 음악회를 열었다. 혈연도 아니고 학연도 없는 순수한 동네 이웃집 가족들이다. 도중에 뜻이 좋다며 동참했다가 이러저러한 이유로 중도에 그만둔 가정들까지 합한다면 20여 가족 남짓 가족 음악회에 출전했었다.
처음에는 “뭐 그런 걸 하느냐”며 마지못해 끌려오던 아버지들이 나중에는 “야 그거 재미있다”며 더 적극적으로 달려든다. 어떤 아버지는 예전에 기타를 쳤다며 자녀들에게 한껏 폼도 잡기도 하고 하모니카를 불며 자녀들과 함께 연주도 한다. 악기를 다루지 못하면 요즘 유행하는 유행가를 부르는 가족도 있다.
올해는 10주년 기념으로 그 동안 음악회 사진을 모아 CD로 구워 한 장씩 나누어 줬다.
한가지 고민이 있다면 아이들이 나이가 들어 이제는 출전을 쑥스럽게 생각한다는 것. 그래서 올해에는 초등학생·중학생을 둔 가족들을 초청했지만 내년에도 또 열릴지는 미지수.
헬렌 황씨는 “10년이 지나고 나니 아이들이 이제는 대학에 진학할 만큼 장성했다고 참가하지 않으려고 한다”며 “어린아이들 가진 가족들이 많이 동참해 이어갔으면 좋겠다”고 아쉬워했다.
<김정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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