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출신의 박선생은 요즘 큰 혼돈에 빠져있다.
6.25에 단신 월남한 그는 북쪽에 두고 온 가족을 마음속에 접어 간직한 채 거대한 피난민 대열에 끼어 부산까지 밀려갔었다.
일가친척 한사람 없는 객지에서 온갖 잡일을 마다하지 않고 한푼두푼 모아 국제시장에 번듯한 가게도 차렸다. 목숨걸고 넘던 38선에서부터 어엿한 가게주인으로 지난날을 회상하던 박선생은 그 유명한 부산국제시장화재로 그동안 피땀으로 이룬 열매를 송두리째 잃고 만다.
하늘을 원망해보고도 싶었지만 원래 빈손이었던 자신을 생각해 재기하기로 작정한다.
9.28수복으로 서울로 올라온 박선생은 이를 악물고 일을 해댄다. 몇 해 안되어 그는 청계천가에 자동차 부속품상을 차린다. 돈벌리는 재미가 쏠쏠해 일요일도 없이 몇 년을 지냈다.
그렇게 일만하던 박선생을 좋게 본 이웃들의 권유로 어느 날 젊은 규수와 맞선도 보았다.
첫눈에 뿅가버린 박선생은 그동안 생각할 틈도 별로 없었던 북에 남기고 온 부모형제들의 그리움이 한꺼번에 말려온다.
장가들던 날 생전 처음 맞추어 입은 양복이 어색한 듯 몸을 이리저리 꼬던 박선생은 면사포입은 최여사가 식장에 들어서는 순간 눈가에 눈물이 팽돌고 말았다.
하객들은 박선생이 감격한 탓이라고 나름대로 해석했지만 그순간 최여사의 얼굴위에는 이북에 계신 박선생 모친의 얼굴이 겹쳐있었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외로웠던 시절에 대한 보상이라도 받고 싶었던 박선생은 삼남이녀의 자식도 두었다.
그러다 70년대초대 미국이민길에 오른다.
비행기타고 태평양을 건너며 박선생은 북에 두고 온 가족은 이제 영영 못 보게 될 거라는 생각에 눈도 못 부치고 LA 공항에 도착한다.
다시 고달픈 이민생활이 시작되었지만 객지 생활에 이미 익숙한 박선생은 가족들을 달래며 또 다른 세계에서의 새생활을 힘차게 밀고 나간다.
몇 년을 살다 부인 최여사의 여고 동창네가 산다는 산호세가 좋다는 소리에 주말을 이용해 부부가 드라이브 삼아 한번 가본다.
전자산업이 일어나기 시작하며 상당히 생동력 있는 도시라고 생각한 박선생은 아이들의 반대를 꺽고 아내의 외로움을 덜어 줄 친구 곁으로 다시 한번 이삿짐을 싼다.
어딜가나 낯설다는 의미가 더 이상 없어진 박선생은 산호세에서도 예전의 억척을 부려 나름대로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었다.
오남매 모두 출가시키고 비교적 여유 있는 삶을 즐기던 박선생은 북한도 방문하여 아직 생존한 누님과 형님네의 초라한 모습도 보고왔다. 물론 선물과 돈도 많이 들고 갔었지만 그걸로 이산가족의 슬픔이 해소되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이미 세상 뜬 부모님들 묘앞에서 눈물이 마를 때까지 울고 돌아온 박선생은 오로지 한가지 생각으로 살고있었다. 어느 날 있는거 모두 정리해 고국에 돌아가 최여사와 조용한 노후를 보내며 여생을 마치자는 단순한 바람이었다.
그런데 이번 대통령선거를 계기로 기성세대가 설 땅이 어딘지가 불확실해졌다는 얘기다.
구세대는 물러가라는 젊은세대들의 외침이 너무 거세다니 그런 분위기의 조국에다 노구를 의지해야 할지 아니면 자식들이 계속살아 갈 이 땅에서 자신들도 주저않아야 할지 몹시 혼돈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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