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3년 1월13일 이른 새벽, 미국 상선 갤릭호는 하와이 호놀룰루 제2부두에 102명의 한인을 내려놓았다. 첫해의 1천133명을 시작으로 1904년에 3천434명, 1905년에 2천659명 등 모두 7천226명으로 늘어난 이민자들은 낯선 이국 땅의 사탕수수 농장 노동자로 고단한 이민생활을 시작했다.
열악한 환경에 저임금으로 시작한 농장 노동자 생활이었지만 이민 1세대들이 가장 관심을 가졌던 부분은 조국의 독립과 2세의 교육이었다. 1907년부터 1913년까지 하와이 이민의 유일한 통합단체로 활약했던 국민회는 국권광복, 동포의 안녕보장, 교육사업증진을 위해 노력하는 한편 독립운동 자금 모금운동도 펼쳤다.
망국의 설움으로 방황하던 이민자들과 결혼하기 위해 ‘사진 신부’들이 1910년 12월 최사라(당시 23세)씨를 시작으로 하와이에 속속 도착하면서 한인사회는 공동체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미 전역에서 기반을 다진 1세대들은 많은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놀라운 교육열을 발휘해 후손들이 미국사회에 진출할 수 있는 토대를 닦았다.
조국 독립운동의 온상이었던 한인들의 이민역사는 1960년대 유학생들의 진출, 1970년대 맨손의 도미행렬, 1980년대 이후 투자 이민 등으로 이어지면서 한인사회를 급격히 팽창시켰다.
재미동포들은 선진 시민의식을 갖추고 미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각 분야에서 어느 민족 못지 않게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이민 100년을 맞는 한인사회는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엄청난 성장을 거듭해 왔다.
1997년 미 경제 센서스에 따르면 미국 내 한인 업체들의 매출 규모는 연간 460억달러에 달하고 있다. 이는 한국의 1999년 국내총생산(GDP)의 9분의1에 이르는 규모이며 고용 인구도 33만4천명에 달한 것으로 조사됐다.
212만 미주 한인들이 누리는 영광과 환희는 가난을 극복하기 위해 부모형제와 고향을 남겨두고 혈혈단신 배를 탔던 이민 1세대의 희생과 꿈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 2003년 1월13일은 미주이민 100주년이 되는 날이다. 이민의 시대사적 배경과 민족사적 의미, 미국 내 한인사회의 발자취와 발전 전망 등을 조명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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