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며칠 남지 않았습니다.
벽엔 한 장 남은 달력이 홀로 외롭고 뒤뜰 키 큰 갈참나무에 달린 마른 잎 파리 몇 잎이 외롭습니다. 장난기 많은 겨울 바람이 그 잎사귀 마저 떨어 뜨리려 주위를 맴돕니다.
바람이 나뭇잎과 장난치는 그 나무 밑엔 팔순이 넘으신 아버지가 차근히 질러 앉아 일에 몰두하고 계십니다. 망치를 든 마른 손 위로 갈색 잎사귀가 떨어집니다.
아버지는 녹슨 쇠창살을 주어다가 다듬고 계셨습니다. 발소리를 들으시고 고개를 돌리시며 “고추 대 할 라고..." 흐뭇한 웃음과 함께 말씀하십니다.
아버지는 깊고 추운 겨울에 뒤뜰 양지에 앉으셔서 내년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쇠창살을 부수어 반듯하게 편 다음 내년 고추밭에 지지대로 쓰시려는 것입니다. 나뭇가지를 주어다가 지지 대를 했는데 내년에는 실한 쇠막대기로 하게 생겼습니다.
아버지는 이미 쇠막대기 주위에 주렁주렁 열려 있는 고추를 보고 계셨습니다. 아버지 마음엔 벌써 싱그런 여름이 와 있었습니다.
어렸을 때 보았던 그 손이 아닙니다. 크고 힘 좋으신 거인 아버지는 사라지고 작고 힘없는 마른 잎사귀 같은 모습만 남았습니다.
손자는 중학교를 들어가서 여드름이 듬성듬성 나고 키가 우후죽순 같이 커 가는데 할아버지는 점점 작아져만 갑니다. 세월은 손자를 키우고 세월은 할아버지를 작게 만듭니다. 그럼 세월이 간다는 것은 나쁜 것일까, 아니면 좋은 것일까.
세월이 간다는 것은 좋은 일 입니다. 왜냐면 아이들이 크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늙으신 아버지는 어떻게 될까요. 아버지도 걱정 없습니다. 아버지는 내년의 여름을 벌써 소망하듯이 이 생의 뒤의 일을 이미 믿음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 세상 뒤엔 천국이 있다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가 믿고 있는 예수님이 세월을 통해 천국으로 인도할 것이라고 확실히 믿기 때문입니다.
예수 안에 있는 사람은 늙어 가는 것을 한탄하지 않습니다.
한 해를 보내면서 천국으로 가는 길목에 더욱 가까이 간다는 것 때문인지 세월이 간다는 것이 전혀 아쉽지가 않습니다.
장인식 목사 아틀란타 한인장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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