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주했던 분진들이 침잠한 푸를 새벽. 창을 연다. 이른 안개가 밀려든다. 바람도 조심스레 찾아든다. 상큼한 갓 따낸 오이 내음만큼 살풋한 엷은 초록의 아침. 넉넉한 안식 후에 또 다른 하루를 만들기 위한 기지개를 켠다. 다른 날 보다 일찍 눈이 떠지는 날엔 부엌 식탁에 앉아 맑은 새벽을 맞이하곤 한다. 씻어놓은 그릇들을 정리하다 찬장의 컵들을 이리저리 옮겨본다. 노란색 키 작은 컵은 유리잔 곁에 있는 것이 어울리지 않아 키가 작은 보라색 컵 곁에 둔다.
유리잔은 유리잔끼리 가지런히 줄을 세운다. 같은 색 같은 모양끼리 모아놓았다고 웬지 수선스러운 듯 편치않아 한다. 너희들 맘대로 섞여보라고 손가는대로 옮겨놓는다. 보이지 않는 손길이 함께 섞여 살으라고 늘 더불어 살으시란다.
소금 후추 양념 담은 작은 병을 빈 것은 채워주며 정리해본다. 작은 소금병, 소금을 다 썼기에 쓰레기통에 넣고 돌아서는데 10년을 넘게 정이 묻은 병인데 다른 새 병이 생겼다고 버리는 것이 너무 인정 없는 일인 것 같다.
소금병을 다시 꺼내들고 ‘널 버려서 정말 미안해’ 잘 닦아서 소금을 채우고 다른 양념병들과 나란히 세워두었다.
소금병이 수줍게 웃으며 고마와 하는 것 같다. 문득 나도 다 써버린 소금병같은 사람은 아닐까. 가진 모든 게 다 소모되고 쓸모없다고 느껴질지라도 새로 닦아 소금을 채워 새워둔 소금병마냥 늘 새롭게 충전된 모습으로 쓸로있는 사람들 틈에 나란히 서 있고 싶다.
육순의 징검다리를 건넌 초로의 모습이 절대로 안스러워 보이지 말아야 한다는 안간힘일지도 모르겠다.
쓰임받는 사람, 어디에서든 꼭 필요한 사람으로 남아있고 싶다. 모든 사람들과 어느 누구와도 늘 더불어 섞여있는, 늘 보고 싶어지는 사람으로, 먼 훗날에도 좋은 기억의 장에 머무는 사람이어야겠다. 상큼한 이 새벽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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