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31일 밤 11시57분. 숨막히게 질주해온 임오년은 3분을 남겨놓았다. 2시간여 DC 아모리(Amory)를 울리던 댄스음악도 숨을 멎었다. 무대 뒤 대형 스크린에서는 서울 보신각 앞의 인파들이 비춰졌다.
드디어 카운트 다운. 들뜬 초침은 마침내 제로를 가리키고 ‘아듀 2002!’ 여기저기서 박수와 환호가 터져 나왔다.
모국에서 맑고 우렁찬 종소리가 그윽히 울려 퍼지고 수백여개의 폭죽이 밤하늘을 수놓을 때 DC 아모리의 동포들은 저마다 희망찬 새해를 기원하며 마음의 폭죽을 터뜨렸다. 얼마 전까지 가요반주에 맞춰 춤을 추며 흥에 겨워 있던 사람들은“새해 복많이 받으세요!"라고 서로에게 덕담을 건넸다.
무대 위에 올라있던 문흥택·김영근 워싱턴 한인연합회장, 김태환·강남중 북버지니아, 이숙원·손순희 수도권메릴랜드한인회장은 손을 흔들며 새해가 열렸음을 기뻐했다.
누군가‘까치 까치 설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남녀노소들은 너도나도 중앙 홀로 나와 어깨동무를 하고 원을 그리며 동심으로 돌아갔다.
“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미국땅에 발을 딛은 지 1백년을 맞는 2003년이 시작된 것이다.
임오년을 보내는 한인 송년 대축제는 이날 밤 7시 막을 올렸다.
9.11 테러 등을 이유로 취소된 이후 4년만에 열린 연말행사의 참석율은 저조한 편. 송년예배 시간 등과 겹쳐서인지 1천석을 미처 채우지 못했다. 양성철 주미대사, 이현주 총영사, 짐 모란 연방 하원의원, 수잔 리 메릴랜드주 하원의원등 내외 귀빈에 고응표, 박규훈, 오석봉 전 한인회장등 한인사회 원로들의 모습도 눈에 띄었다.
1부 사회자는 김영호 워싱턴기독교복음방송국 사장. 장년의 동포들은 왕년의 명 사회자의 얼굴을 알아보고 중후한 미성을 기억해냈다.
국민의례가 있고 소프라노 양춘희씨의 선창에 따른 양국가 봉창, 3개 한인회장 인사가 뒤를 이었다.
축사에서 양성철 주미대사는“태풍 루사로 한국민들이 어려움을 겪을 때 워싱턴 동포들이 성금을 모아준 것에 대해 대한민국 정부를 대표해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북버지니아에 지역구를 둔 짐 모란 하원의원(민주)은 경색돼가는 한미관계에 대해 언급했다. 그는 먼저 미군 장갑차에 의한 여중생 압사사건에 대해 유감을 표한 후“한국전에서의 미군의 희생을 잊지 말아달라"며 반미감정이 확산되는 걸 경계했다.
북한의 핵개발로 한반도 긴장이 심화되는데 대해서는“한미 양국이 긴밀한 협조로 풀어나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영상 메시지도 전달됐다. 마크 워너 버지니아주지사, 케이트 헨리 훼어팩스 카운티 수퍼바이저위원회 위원장은 축제의 즐거움을 기원한 후 한국말로“새해 복많이 받으세요!"라고 인사해 박수를 받았다.
문흥택 회장은 한인회 운영에 도움을 준 김영자씨(DC 복권국)에 공로패, 엑사 어드바이저 이정화씨, 불참했지만 STG 이수동 회장, 홈킴 그룹 김종일 회장에 감사패를 전달하며 고마움을 나타냈다.
송년축제는 한인사회 리더십이 교체되고 새로운 세대가등장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문흥택 회장은 제31대 김영근 신임회장에 한인회기를 넘겨주며 2년의 임기를 마치고 작별을 고했다.
1부의 지루함이 장내의 피로감을 축적시켜갈 때 2부 막이 올랐다. 그야말로 먹고 노는 시간.
지미 김의 사회에 뉴욕에서 온 5인조 밴드‘키보이스’가 분위기를 잡았다. 동네 가수들이 모처럼 마이크를 잡았고 팝송에 흘러간 가요들이 백가쟁명처럼 쏟아져 나왔다.
‘봉선화 연정’에‘사랑은 나비인가봐’가 이어지자 객석의 체온이 올라가고 중앙에 마련된 홀이 춤꾼들로 메워졌다. 나비 넥타이로 멋을 낸 노신사는 멋드러진 춤으로 홀을 장악했고 50대 아주머니는 흥을 못이겨 연신 구두굽으로 바닥을 두드려댔다.
아모리 실내체육관 한켠에는 먹자 코너가 마련돼 송년객들의 허기를 채웠다. 동아식품의 먹자코너에는 회, 족발, 우동, 과일, 떡에 막걸리, 소주등 전통음식이 등장, 인기를 얻었다.
여흥 중간중간에 한국 왕복항공권, TV 등 수많은 경품들이 추첨을 통해 제각기 주인을 찾아갔다.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현대 액센트 승용차 추첨. 공명철 대회장이 당첨자를 호명하자 50대의 아주머니가 환호를 지르며 달려나갔다.
행운의 주인공은 안명희씨(54). 알렉산드리아에 사는 안씨는“복권이고 뭐고 이런 행운은 처음"이라며“이민온 지 26년만에 최고로 기쁜 날"이라고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새해 0시20분, 해갈음의 통과의례는 끝났다. 사위는 어둠, 귀가길 동포들의 차창에 계미년의 첫 비가 내렸다. ‘설은 질어야 하고, 보름은 말라야 한다’는 속담에 사람들은 길년(吉年)을 점쳤다.
<이종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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