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풀을 가꾸며 건져 올린 삶의 성찰들
황대권 글·그림
도솔 펴냄
인간의 몸을 한평 방속에 가두어 둘수는 있어도 정신까지 가두어 둘수는 없는 법이다. 옥중에서 탄생한 위대한 문학적 소산들이 바로 그것을 증명해 주고 있다.
고전문학의 정수로 꼽히는 존 번연의 ‘천로역정’등 수많은 저작들은 어디에도 갖힐수 없는 자유로운 인간정신의 결과물이다.
수년전 읽었던 신영복 교수(성공회대 교수)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통해서도 이것을 확인한 적이 있다.
통혁당 사건으로 젊은시절 20년 이상을 감옥에서 보내야 했던 신교수가 옥중에서의 좌절과 절망감을 극복하면서 썼던 수많은 편지들을 모은 이 책속에는 그가 영어의 몸이 되지 않았을 경우 거쳤을 사유보다 훨씬 깊고도 치열한 성찰이 드러나 감동을 받은바 있다.
최근 신교수의 저작을 떠올리게 하는 또 하나의 책을 만났다. 생태공동체 연구모임을 이끌면서 자연과 인간문제에 천착하고 있는 황대권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 ‘야생초 편지’가 바로 그것이다.
이 책은 신교수처럼 전두환 정권시절 소위 학원간첩단 사건에 연루돼 무기징역을 선고 받고 복역하다 13년만에 풀려난 황씨가 교도소내에서 야생풀들을 관찰하면서 쓰고 그린 사색의 일기이다.
야생초들을 사랑하게 되고 이들을 정성스레 키워가면서 저자는 이런 깨달음을 얻는다. “풍요로운 생활환경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 것이지만 열악한 환경속에서도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풍요로운 삶을 꾸려 나갈수 있다. 이런 점에서 삭막한 교도소에서 만나는 상처투성이 야생초들은 나의 삶을 풍요롭게 가꾸어 주는 귀중한 ‘옥중동지’가 아닐수 없다.” 황씨는 야생초를 그저 사유의 대상으로만 바라 보지 않는다. 야생초를 관찰하는 그의 전문가적 식견은 재미를 안겨줄뿐 아니라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까지 흔들어 놓는다.
명아주, 쇠비름, 쇠별꽃등 이름은 생소하지만 지천에 널려 있는 들풀들을 모아 된장으로 무친 ‘들풀모음’이며 국화꽃과 쑥등으로 우려내는 ‘야생초 차’를 접하다 보면 입맛도 다셔지고 과연 무엇이 해로운 잡초이고 무엇이 이로운 농산물인가 근본적인 의문이 생긴다.
저자는 “야생초에는 인간의 손때가 묻은 관상용 화초에서 느껴지는 화려함이나 교만이 없기 때문에 나 스스로를 다스리자는 뜻에서 야생초를 좋아하게 됐노라”고 고백한다. 그가 관찰하고 먹어보는등 10년넘는 임상을 통해 내린 결론은 “야채와 달리 야생초는 자연상태에서 섭취한 영양소와 천지기운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때문에 야생초를 먹게되면 따로 영양제나 비타민을 먹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읽어가면서 우리가 무심히 보아 넘기고 짓밟았던 야생의 들풀 하나하나가 전혀 새로운 의미로 다가옴을 느끼게 된다. 그 풀 하나하나가 바로 이름없는 민초들과 같을진대 우리가 무심히 대했던 사람들 하나하나도 그만큼 소중하다는 뜻이 아닐까. 황씨가 그린 야생초 그림들 또한 정겹다.
<조윤성 기자>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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