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읽은 동화 중 특별히 기억에 남는 작품이 하나 있다.
매일같이 옷을 갈아입고 의젓한 의상에 관심이 많은 한 임금이 있었다. 그는 어느날 착한 사람들의 눈에만 보인다는 세상에서 가장 화려한 의상을 입고 시중에 나섰다. 그러나 이 옷은 사실 존재하지도 않은 옷이어서 임금은 나체로 행렬에 나섰다가 망신만 당했다는 내용이다.
임금은 ‘바보, 무능력’이라는 질책이 두려워 자신들의 입장만을 생각하고 불충한 신하들과 행렬을 구경나와 서로의 눈치만 보던 국민들의 침묵에 아무 것도 모르고 우쭐댔다. 결국 천진난만한 한 어린아이에 의해 자신이 벌거벗은 사실을 알게됐다는 것이다.
덴마크 출신 한스 크리스찬 앤더슨(1805∼1875)이 지은 ‘벌거벗은 임금님’(Emperor’s New Suit)은 ‘허영심’(Vanity)과 ‘착각’(Illusion)의 어리석음을 일깨워 주고 있다. 또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사실을 왜곡하거나 외면할 수도 있다는 아픈 교훈도 새겨주었다.
뉴욕 한인사회에 ‘개고기 암거래 시장 존재 여부’를 파헤친 내용을 보도한 미국 방송사를 상대로 한인부부가 제기한 명예훼손 및 인권침해 소송이 최근 법정 밖 합의에 따라 원고측이 소송을 취하하면서 종결됐다.
농장을 운영하는 부부는 보도로 인해 자신들과 한인사회가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 700만달러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고 방송사측은 사실에 입각한 보도임을 내세워 소송기각신청을 접수시켰다. 결국 양측은 서로 재판 전 합의에 도달한 것이다.
원고와 피고측은 합의내용을 일체 사회에 공개하지 않기로 서로 합의했다.
따라서 원고측은 과연 방송사측으로부터 사과를 받았는지, 앞으로 정정보도를 하겠다는 약속을 얻어냈는지, 물질적인 보상을 따냈는지 알 수가 없는 상황이다. 아니면 원고측이 피고인 방송사측에 보도의 공정성을 인정하고 소송을 끝을 맺었는지 조차도 모르는 사항이다.
그럼에도 일부에서는 ‘소송 취하’라는 객관적 사실을 ‘벌거벗은 임금님’이 한때 입었다고 착각했던 ‘착한 사람의 눈에만 보이는 세상에서 가장 화려한 옷’이라고 떠들어 대고 있다.
고달픈 이민생활,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인종차별, 위축된 경기 등에 찌들려 있는 한인사회가 미국 언론사를 굴복시켰다는 쾌거를 갈망할 수는 있겠지만 왜곡되거나 부풀려진 사실은 ‘불충’과 ‘침묵’으로 결코 사실이 될 수가 없다.
한인사회가 ‘허영심’과 ‘착각’에 빠져 벌거벗고 행렬에 나섰다가 개망신을 당하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한다.
<신용일 기자>yishi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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