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햇살 품에 안겨 움터 오르는 새순 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맑은 눈빛, 정갈한 몸짓, 들풀들이 바람결에 부딪히며 소곤거리듯 늘 나직하고 다정하게 말을 건네는 사람이었습니다. 많은 문인들이 그를 보면, 탁했던 마음이 맑아진다고 합니다. 지리산 중턱에 버려진 무당 집에서 혼자 살고 있는 그 시인을 사람들은 숲의 시인이라고 불렀습니다.
그가 하루는 전주시내 술집에서 문인친구들과 술을 마시는데, 그의 등뒤에서 욕설과 함께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돌아보니 어깨도 딱 벌어지고, 머리카락도 짧은 체구가 건장한 사내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점점 더 목소리를 높여가며 욕지거리를 해대는 것이었습니다.
마침내 시인은 그 소리를 견디다 못해 벌떡 일어나 그들에게로 다가갔습니다. "조용히들 해요! 도대체 참을 수가 있어야지요. 당신들이 이 술집 전세 냈어요?" 그러자 자리에 앉아 있던 사내들이 일제히 "뭐야!" 하며 벌떡 일어났습니다.
갑작스런 목소리에 술집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시인과 사내들에게로 집중됐습니다. 술집에 있던 사람들은 일제히 그 사내들 분위기에 기가 질려 놀라며 걱정스런 눈빛으로 몸을 움츠렸습니다.
그러자 시인이 갑자기 사내들 자리에 있던 맥주병을 집어 꿀꺽꿀꺽 술을 들이킨 뒤 그 사내들 중 한사람 얼굴에 "푸우-"하고 내뿜고는 획 돌아서는데, 그만 다리가 꼬여 휘청거리며 꽈당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그 순간 잔뜩 긴장해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그 사내들도 박장대소를 하며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순간 주인이 얼른 시인을 일으켜 세워 밖으로 데리고 나갔습니다.
그 다음날, 전화벨소리에 깨어 전화를 받자 어제의 그 술집주인이 다급한 목소리로 "형님, 어서 피하세요. 어제 그 사람들 전라도 일대를 완전히 통일한 00파인데, 형님에 대해서 꼬치꼬치 물어 보고 갔어요. 그리고 형님이 술을 뿜은 사람이 바로 조폭두목이래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오금이 저려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는데, 갑자기 밖에서 두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시인은 어이쿠 일났네 싶어 방문도 못 열고 가만히 한참을 숨죽이고 있다가 슬그머니 방문을 여니, 어젯밤 보았던 깡패들이 뜰 안을 가득 메우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갑자기 사내들 이십 여 명이 구십도로 허리를 꺾어 "형님 편안히 주무셨습니까!" 인사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다다당신들 여기서 뭐뭐 하는 겁니까?" 시인은 당황스러워 말을 더듬거렸습니다. 그 때 어젯밤 술 벼락을 맞은 사내가 앞으로 나와 무릎을 탁 꿇더니, "앞으로 형님으로 깍듯하게 모시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뒤에 있던 사내들도 일제히 무릎을 꿇으며 ‘형님!"소리치는 것이었습니다. 그 조폭두목은 시를 좋아한다고 합니다. 그가 돌아간 후 전화기 옆에는 수표가 들어 있는 흰 봉투가 곱게 놓여있었습니다.
한달 전 고국 방문 때 전주에서 문인 20여명과 함께 걸죽한 막걸리 잔을 기울이며 들은, 그 선배시인의 10여 년 전의 이야기 한 토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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