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추억은 간직하는 것이지 확인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했던 말이 새삼 떠오른다.
내 마음 속에 ‘미꾸라지’라는 물고기가 유독 지워지지 않고 있는 것은 어릴 적 추억 속에 묻혀있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은 먼 옛날 얘기가 되어버렸지만 시골의 논바닥 물꼬 아래로 뽀글뽀글한 거품이 일고 있는 작은 웅덩이 안에는 붕어, 메기, 미꾸라지, 우렁이 같은 작은 물고기들이 나름대로 평화롭게 노닐고, 장마가 지는 여름철에는 미꾸라지들이 길바닥 위에서 꾸물꾸물 기어다니는 모습도 쉽게 볼 수 있었다.
미꾸라지는 민물에서 사는 민물고기지만 흙탕에 숨어살기 때문에 개구쟁이 우리들이 잡으려고 하면 미끄럽게 쑥쑥 빠져나가 온 몸이 흙투성이가 되어도, 엄마한테 욕먹을 생각보다 즐거움이 앞섰다.
장대비가 왔다가 그치면 우리들은 맨발로 동네를 나가 뛰어다녔다. 자작자작 빗물이 고인 길바닥에는 미꾸라지들이 꿈틀거리며 기어다녔다. 장대비에 웅덩이 물이 넘쳐 개울로 미쳐 내려가지 못한 녀석들이 길 위에 남아 꿈틀대고 있었던 것을 그때 어른들은 미꾸라지가 용처럼 하늘에 올라가다 떨어진 것이라고 했다. 우리들은 그 말을 믿고 참 신기하게 생각했는데 나중 크면서 이 사실을 알았다.
미꾸라지는 겨울에 동면하기 때문에 살이 없고, 산란기인 봄철에 먹이를 많이 먹어 기름기가 많아진다. 단백질, 비타민, 특히 칼슘이 풍부해 보신강장 식품으로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지만 비린내가 심해 흠이라면 흠이다.
요즘에야 양식장에서 키운 미꾸라지를 기계에 갈아 수출을 하고, 비린내를 없애기 위해 산초가루와 들깨를 잔뜩 넣어 요리를 한다고 한다.
몇 년 전인가 LA 한인타운에 추어탕 전문 음식점이 생겨 반가워했는데 요즘에는 여러 식당에서 추어탕, 추어볶음, 추어튀김을 한다고 선전이 요란하다.
얼마전 일이다. 절친하게 지내는 이웃 분들과 추어탕 얘기가 나와 당장 먹으러 가자고 약속을 했다. 마켓을 하는 나는 문을 늦게 닫기 때문에 항상 식당을 가도 늦게 문을 닫는 집을 찾게 된다.
한번 다녀왔다는 남편 말로는 그 식당에는 추어탕을 전문으로 하지만 추어볶음도 차림표에 써있더라고 해서 더욱 귀가 솔깃해졌다.
어렸을 적 올케언니가 미꾸라지와 시래기를 잔뜩 넣고 볶아 주었던 그 맛이 떠올라 잔뜩 기대를 하고 서둘러 식당 문을 들어섰더니 늦은 시간이라 추어볶음은 안되고 추어탕만 된단다.
그 날 추어탕을 먹으면서 옛 맛은 전혀 느낄 수가 없었다.
웬 일일까. 입맛이 변한 탓일까. 시대가 바뀐 탓일까. 아니면 장소가? 또 아니면 세월이 바뀐 탓일까.
나는 혀끝에 맴도는 역겨운 냄새로 음식을 입안에서 굴리고 있으면서 왜 나는 미꾸라지 음식을 그렇게 좋아했는지 내가 생각해도 모를 일이다. 미꾸라지를 잡는다고 논두렁 웅덩이를 비집던 개구쟁이 시절.
‘아기씨’는 미꾸라지를 좋아한다고 자기 몫을 내 대접 위에 옮겨 수북하게 해주었던 올케 언니.
겨울이면 웅덩이 얼음을 깨고 미꾸라지를 잡아왔던 오빠. 다시는 올 수 없는 귀중한 추억들이다.
중년으로 접어든 나이에 고향과는 너무나 먼 곳에서 이 모든 추억은 추억 속에 묻어두리라 맘먹는다.
김복희
약 력
▲ 한국 수필문학 등단
▲ 미주 크리스찬문인협회 회원
▲ 재미 수필문학가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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