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문학자 칼럼
▶ 조경근교수 (스탠포드대 방문학자)
위기는 과장도 축소도 되지 말아야 한다. 위기로 나타나고 있는 현상들을 유심히 관찰하고 그 배경과 추이를 면밀히 분석해야 한다. 위기의 해석에 선입관이나 잘되겠지 라는 막연한 기대를 섞지 말아야 한다. 설령 위기가 싱겁게 끝난다 할지라도 이런 과정과 노력은 반드시 필요하며 매우 중요한 일이다.
한국에서는 오랜 기간동안 정부나 정치권이 너무나 많은 것을 과장하거나 축소해왔기 때문에 국민들이 현실에 냉소적인 경향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어떤 일이 예상이나 우려와 다른 내용으로 끝나면 그동안의 노력이 아무 쓸모없는 것이었다고 일방적으로 비판하는 경향도 가지고 있다.
부시정부 출발이후, 북한과 미국간의 밀고 당기기가 각자 제 뜻대로 되지 않자 2월에 들어서는 거의 막가는 수준의 언사들이 오가고 있다. 핵무기 개발이 자주권 문제임을 재삼 강조하고 나선 북한은 최근 들어 미국의 한반도 병력 증강이 미군에 대한 선제공격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미국에 경고했다. 한동안 대화와 양보를 시사하고 강조하던 미국도 이제는 국방장관이 아니라 국무장관까지 나서서 미국이 군사적 방안을 배제하고 있는 것이 아님을 북한에 경고했다.
한반도에 당장이라도 무슨 일이 터질 것 같은 양측의 발언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지금까지는 이 발언들이 정치적 계산에서 나왔다고 보는 견해가 우세하다. 북한에게 미군을 선제공격할 분명한 의사가 있다거나 미국에게 북한의 핵시설을 선제공격할 분명한 의사가 있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관측인 것이다.
북한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할 수는 없지만, 선제공격까지 언급한 북한의 강경대응에는 다음과 같은 배경이 있어 보인다. 첫째, 미군에 실질적인 위협을 가할 수 있는 수준의 미사일과 핵무기를 이미 보유하고 있다는 인상을 풍김으로써 미국의 위협을 피하려는 것이다. 북한이 멀리 미국서부에 도달할 수 있는 장거리 미사일을 이미 개발했는지 그리고 핵무기를 가지고 있는지는 여전히 논란거리다. 때로 이런 것들이 없는 것처럼 또 때로 이런 것들을 가진 것처럼 처신하는 것이 가장 유리하다고 판단해온 북한이 이번에는 가진 것처럼 행세함으로써 미국이 북한의 능력을 얕잡아 보아 군사행동을 쉬 결정하지 못하도록 하려는데 목적을 둔 것으로 볼 수 있다.
둘째, 미군에 대한 공격이라고 하지만 어차피 남한 지역이 공격목표가 된다는 점에서 이 같은 위기조장은 남한으로 하여금 더욱 열심히 미국의 강경대응을 막도록 만들 수 있다는 계산이 그것이다. 문민정부이후 그리고 특히 국민의 정부에서 가장 강조되어온 가치가 어떤 일이 있어도 전쟁은 피해야한다는 것이다. 여기다 남한의 반미정서는 과거 어느 때보다 높고, 노무현 차기 정부 또한 일방적인 반북친미(反北親美)는 지양하려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 북한은 미국의 노골적인 군사위협에 맞서기 위해 선제공격을 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를 폄으로써 남한에 남북한(한반도)이 공히 미국의 위협으로 인한 위기에 직면해 있음을 인식시키는 한편 전쟁 상황을 원치 않는 남한이 미국의 군사행동을 막는데 확실히 일조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셋째, 눈앞에 다가온 미국과 이라크간의 전쟁 및 미국 국내와 전 세계적 반전기류를 이용하려는 것이다. 미국이 말로는 두 개 전쟁의 성공을 주장하고 있지만 두 개 전쟁의 수행이 미국 국내 여론과 사정상 실제로 매우 어렵다는 점을 미국도 북한도 잘 알고 있다. 미국과 이라크간의 갈등이 없는 상황이라면 북한의 선제공격 발언은 나오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즉, 북한은 위기조장을 통한 이익추구라는 카드를 쓸 수 있는 상황에서 쓰고 있는 것이다.
넷째, 식량과 에너지 부족 등 시간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는 북한 내부 사정을 대외적 위기조장을 통해 통치하려는 측면과 군부 등 강경 목소리를 다독거리는 일환의 측면도 가정할 수 있다. 북한이 핵무기 프로그램을 재개한 이후 대부분의 식량원조와 중유공급이 끊어져 북한사회가 큰 어려움에 빠져있다. 북한이 수차례에 걸쳐 대미 유화 제스처를 취하고 직접대화를 요구했음에도 불구하고 부시행정부의 대북강경노선에 근본변화가 없는 사실은 북한 내 협상론자들의 입지는 약화시킨 반면 강경론자들의 입지는 강화시킨 것으로 추측케 한다. 그렇다면, 이런 내부적 어려움이 선제공격 주장의 주조 배경 중 하나일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결국 적어도 현재로서는 북한의 초강경발언이 계산된 시위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물론 북한이 매우 제한적인 목적을 위해 치고 빠지는 식의 선제공격을 할 가능성이 아주 없다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그리고 역사 속에는 정확한 계산과 판단보다는 오인(誤認)과 오판(誤判)으로 인한 불상사가 더 많았다는 사실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아무튼 한반도는 지금 가장 냉철한 현실직시와 통찰력 그리고 상황판단을 요구하는 시기에 직면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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