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신히 겨우 사는 것이
가장 잘사는 것”
얼마전 들른 단골책방의 주인이 호들갑이다. “조형, 어제 무슨 일 난 줄 알았어. 전우익이라는 노인이 쓴 책이 한 60권 가량 있었는데 글쎄 오늘 갑자기 이 책을 찾는 사람들이 몰려드는 거야. 오랫동안 먼지를 뒤집어 쓴 채 놓여있던 책들이 하루만에 모두 팔려 버렸어.”
그의 설명인즉 전날 밤 이곳 KTAN-TV를 통해 한국 모방송국의 ‘느낌표’라는 프로그램이 방영됐는데 여기에 전 노인 책이 소개되고 그의 인터뷰가 나갔다는 것이다. 이 프로그램을 본 사람들의 반응은 즉각적이어서 그의 책들이 바로 다음날로 동이 난 것이다. 나날이 문화권력화 되어 가는 TV의 위력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렇지 않았더라면 그냥 무관심 속에 묻혀 있었을 책이 이런 경로로나마 사람들의 손에 쥐어지게 된 게 다행스럽기도 하다.
TV에 추천도서로 소개된 것은 전우익 노인이 지난 93년 쓴 ‘혼자만 잘살믄 무슨 재민겨’인데 그는 이후에도 ‘호박이 어디 공짜로 굴러옵디까’와 ‘사람이 뭔데’ 등을 펴냈다. ‘전우익 3부작’이라 부를 수 있을 만큼 주제가 비슷하고 일관성이 있다. 본국 TV에 소개된 후 공익사업에 기탁된 ‘혼자만 잘살믄 무슨 재민겨’의 인세만도 1억수천만원에 달한다니 아닌 말로 하루밤 새에 뜬 책이 된 셈이다.
전우익 노인은 경상도 고향집에서 밭농사 짓고 나무 키우면서 홀로 살아가는 촌로이다. 해방 후 ‘민청’에서 청년활동을 하다 사회안전법에 연루돼 6년 남짓 징역살이를 했던 그에게서는 딱히 내세울 만한 학력이나 이력을 찾아보기 힘들다. 그러나 폭넓은 독서와 사색, 그리고 농사라는 일상을 통해 깨달은 교훈을 서간문 형식을 빌어 자연스럽게 풀어내는 솜씨가 만만치 않다. TV에 비친 그의 거침없는 말투와 천진한 미소가 시각적인 신뢰감을 더해 책을 단숨에 베스트셀러에 올려놓은 듯 하다.
그러나 우익 노인의 책 속에 담긴 메시지들은 ‘우익’과는 거리가 멀다. “간신히 겨우 사는 것이 가장 잘 사는 것”이라는 그의 소신에 오히려 많은 이들은 불편함을 느끼게 될지도 모른다. 3권의 책 속에는 다툼 없이 순리에 순응하며 존재하는 자연과의 비교를 통해 들여다본 인간들의 부끄러운 자화상들이 나열돼 있다.
“동물들은 평생동안 남의 흉내를 내지 않아요. 개는 개소리, 닭은 닭소리, 새들도 각각 그들만의 독특한 소리를 내지요. 그걸 자효라고 한다지요. 그런데 인간만이 남의 흉내를 내기 위해 안달하고 그걸 못하면 좌절하는 것 같아요”(혼자만 잘살믄 무슨 재민겨)
“제가 보기엔 단풍든 감잎은 참 아름답습니다. 그 많은 잎이 한 잎 한 잎 서로 다르게, 한 잎에도 여러 색깔로 물든 것이 놀랍습니다. 같고 닮은 것 못지 않게 다른 것 또한 소중한 자연의 이치인데 같기와 닮기만 바라는 건 자연의 이치에 어긋나는 것 같습니다. 요사인 단감이 판치는데 한겨울에 떫은감으로 앉힌 바싹 언 홍시를 따스한 구들방에서 먹는 맛은 일품입니다. 자연이 빚은 아이스크림입니다. 단것만 먹고사는 것이 과연 행복할까요?”(사람이 뭔데)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역설적인 풍요로움이다. 그러나 그 역설은 쉽게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는 흰쌀밥이 아니다. 마치 거친 음식과 같아 씹고 또 씹을 때에만 제 맛을 느끼게 된다.
조윤성 기자
yoonscho@koreatimes.com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