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독자투고
▶ 정상기 변호사(한인 생활상담소 전 이사장)
신문에서 음주운전 사고 기사를 대할 때마다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생활상담소의 음주운전 재교육 프로그램에서 상담했던 그 사람은 한인사회의 음주문화를 통탄했다. 남자가 술을 못하면 설자리가 없는 것이 한국 정서라고 꼬집었다. 특히, 대통령선거 때마다 후보들의 프로필에 가족관계, 학력, 취미와 함께 반드시 주량이 공개된다는 그의 뼈 있는 지적이 기억에 남는다.
그러고 보니 대통령후보뿐 아니라 웬만한 사람의 인물소개에도 주량이 꼭 표시된다.‘소주 한 병’이나‘양주 반병’의 주량이 본인에게 가장 인상깊었던 책이나 존경하는 인물과 나란히 소개된다. 주량이 큰 남자를 호걸로 치부하는 문화는 비단 한국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삼국지에 나오는 장비나 수호지에 나오는 노지심 같은 호걸들은 밑 빠진 독처럼 술을 마셨다.
한국인들의 술에 대한 이해심은 참으로 놀랍다. 술 접대 때문에 건강에 피해를 입은 사실이 입증되면 산재보험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기사를 최근 읽었다. 회사마다 두고 있다는‘술 상무’제도를 현실화, 법제화한다는 내용이었던 것 같다. 술로 인한 국가적 손실은 차치 하더라도 국민건강 정책의 우선 순위를 어디에 두고 있는지 한탄을 금할 수 없다. 서울 지하철 차내 벽 광고의 반 이상이 술 때문에 생긴 위장병을 겨냥한 약 선전이라면 지나친 과장일까?
미국에 사는 한인들도 별로 다르지 않다. 저녁시간 한국 식당에 가보면‘원샷’이라고 고함지르며 폭탄주를 돌리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다른 테이블의 손님들은 개의치 않고 떠들어대며 잔을 주고받는다. 음주운전보다도 주는 잔을 피하는 무례가 더 큰 죄인 것 같다.
당국의 단속을 피하려고 물 주전자에 소주를 담아 내오는 업소들도 있다. 하와이의 미국인들은 한인 이민역사 100주년은 몰라도 한인이 경영하는 룸살롱은 안다는 우스개 말이 있다. 심지어 음주운전 재교육을 마친 사실을 축하하기 위해 한잔하자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문제는 우리의 잘못된 음주문화다. 서로 정을 나누는 것은 좋지만 남에게 강제적으로, 또는 의무적으로 술을 따라주고 받는 관습이 수많은 사람에게 피해를 준다. 더구나, 싫다는 사람을 억지로 2차, 3차까지 끌고 가 곤드레만드레 된 뒤 귀가시키는 것은 살인행위나 다름없다.
우리는 마치 술에 가장 센 자의 팔을 들어주는 듯한 비뚤어진 사회풍토에서 살고 있다. 미국인 사회에서는 어림도 없는 일이다. 만취된 사람에게는 술을 더 이상 팔 수 없게 돼있고, 미성년자나 자기 고용인에게 술을 억지로 권해도 고소 당할 수 있다. 머지 않아 자기 집에서 술을 마신 손님이 낸 사고에도 법적 책임을 지게될 날이 틀림없이 올 것으로 본다. 아마도 억지로 술을 권하는 한인사회에서 그 첫 케이스가 발생할지도 모른다.
워싱턴주의 한 여류 대법관이 음주운전으로 적발돼 곤욕을 치르고 있다. 프리웨이를 거꾸로 달리며 연쇄 충돌사고를 일으켜 사상자를 낸 한 한인도 음주운전 전력이 있는 것으로 보도됐다. 몇 년 전 I-5에서 대낮에 도로공사 인부가 음주운전 한인의 자동차에 치여 죽은 사건도 있었다.
음주운전 사고가 보도될 때마다 피해자와 가해자, 그리고 그들의 가족이 걱정되지만 특히 가해자가 한인일 경우 심경이 착잡해진다. 한인사회의 퇴폐적 음주문화는 반드시 추방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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