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관급회담 첫날…대북정책 기조변화 시사
북한이 핵무기 보유를 시인함에 따라 그 동안 ‘핵 개발 저지’라는 예방적 목표에 주력했던 정부의 대북 정책이 궤도를 수정을 하고 있다.
북한 핵 문제가 수 개월 걸리는 재처리 단계가 아니라, 기폭실험 등을 거쳐 바로 무기로 전환될 수도 있는 사안이 됐기 때문이다.
27일 평양에서 시작된 10차 남북장관급회담은 정부가 북한의 핵 무기 보유 언급에 대해 정면으로 경고하는 자리가 됐다.
남측 수석대표인 정세현 통일부 장관은 첫날 기조연설에서 “(한반도비핵화선언에서) 약속한 대로 핵 시설 뿐만 아니라 핵 무기도 폐기하라”고 강력하게 요구했다.
핵 문제는 북미간 문제라고 선을 그어온 북한을 상대로 정부는 핵 시설의 전면 폐기까지 요구한 것은 사실상 처음이다. 정부는 28일 회의서도 다시 핵 폐기를 최우선 의제로 제기할 방침이다.
정부 당국자는 “북한의 핵 보유 시인은 위기가 한 단계 높아졌고, 문제 해결의 시간도 촉박해졌음을 의미한다”면서 “이제 위기의 현상 동결이 아니라 북한의 핵 무기 폐기가 최소한의 정책 목표”라고 말했다.
이 당국자는 특히 “북한에 대해 핵개발 폐기, 미국에 대해 무력사용 자제를 주장해온 우리의 명분이 상당부분 줄어들었다”고 말해 대북정책의 기조가 재검토되고 있음을 시사했다.
정부 내에서는 북한이 이번 장관급 회담에서 확정할 방침인 쌀 및 비료 지원 문제도 핵 문제와 연계해야 한다는 강경한 분위기도 감지된다.
정부는 이날 식량지원 뿐 아니라 북측이 적극 제의한 6월15일 경의ㆍ동해선 철도궤도 연결 행사, 이산가족 면회소 건설 등 협력 사업에 대해서도 즉답을 피했다.
이번 회담에서 북측의 전향적인 입장 표명이 없을 경우 이들 협력사업에 대해서는 합의가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정부의 다른 당국자는 “핵 문제는 남북관계의 최대 걸림돌”이라면서 “장관급회담을 이제는 교류협력의 날짜나 잡는 모임이 아니라 남북관계의 전략적 큰 틀을 마련하는 장으로 격상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이 같은 언급 역시 대북정책의 변화를 시사하는 대목이다.
정부는 그러나 북한 핵 문제의 실질적 당사국인 미국이 북한의 핵 보유 발언에도 불구하고 평화ㆍ외교적 해결 방안에 힘을 싣고 있는데 주목하고 있다.
정부 고위당국자는 “수일내 3자회담 결과에 대한 미국측의 종합적 입장 발표가 있을 것”이라면서 “무엇보다 미국이 대화를 통한 평화적 해결이라는 틀 안에서 해법을 찾을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게 관건”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북한이 내놓았다는 ‘대담한 제안’을 면밀하게 평가, 추가적인 대화의 계기가 마련될 수 있도록 외교력을 모을 방침이다.
정부 관계자는 “북한 핵 상황이 악화됐다손 치더라도 대화를 통해 푸는 수밖에 없다”면서 “북한의 제안에 대한 한미일 3국의 검토가 끝나면 다시 다자적 방식의 해결책을 모색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동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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