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릴 적엔 유치원 다니는 아이들이 많지 않았다. 엄마는 첫 딸인 나를 유명 유치원에 보내고 싶으셨나보다.
신촌에 있던 모 여대 부속 유치원으로, 그 당시엔 부유층의 전유물이다시피 한 곳이었다고 한다.
시험 치러 가보니 시설이며 장난감들이 별천지에 온 것만 같았다.
아이들도 어찌나 예쁜 옷들을 입고 왔는지 내 옷과는 비교도 안되었다.
아버지의 양복을 뜯어만든 내 외투는. 너무 고상한 색인 나머지 엄마가 빨간색 단추로 액센트를 주었건만…
더하기 빼기나 받아쓰기를 볼 줄 알고 열심히 대비를 했는데, 시험문제는 그런 게 아니었다. 그 땐 흔치 않았던 가전제품들을 보여주며 무어냐고 물어보았다.
냉장고 그림을 보곤 이모네 양장점에 있던 금고와 비슷하여 ‘돈궤’라고 대답했고, 텔리비전을 보곤 ‘빵 기계’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아마도 생활수준을 알아보려는 면접이었던 것 같다.
나는 대답을 여럿 못하고 울어버렸는데 결국은 떨어졌다. 최초의 낙방기록이다. 엄마는 자존심이 무척 상했는지 오래도록 그 유치원에 반감을 표시하곤 했다.
그 뒤론 엄마는 더욱 분발?하여 더 극성스럽게 내 교육에 전념을 하셨다. 초등학교부터 엄마가 과외 가라면 가고, 중학교 입시도 엄마의 소원대로 했다.
심지어 대학과 전공까지도 엄마가 정해준 대로 갔으니 학교입학에 내 의견이 반영된 적은 없는 듯하다.
그랬던 터여서 우리아이의 교육도 전적으로 내 손에 달린 양 살았고, 아이의 대학 입학도 내 결정대로 될 줄 알았다.
3월부터 오기 시작한 아이의 대입 허가서는 4월까지 계속되었다.
학비부담을 생각하여 사립은 안 된다고 미리 못박아두었고, 가까운 UC계열 학교가 좋다며 수시로 세뇌시켜 놓았었다.
남편은 아이에게 서울에선 서울대학이 좋은 것처럼 L.A에선 UCLA가 좋은 대학이라며 공작을 했다.
소규모의 회사라도 아이가 졸업하면 제 아빠의 회사를 도와주겠지 하는 기대가 있었기에, 건축이나 토목계통의 엔지니어링을 전공하길 바렀다.
그런데 이 무심한 어미는 정작 아이의 적성에는 신경도 안 쓰고 있었다. 아이는 이과가 아닌 문과 쪽에 관심이 있었다.
평소에 글로도 말로도 ‘아이가 원하는 대로 해주겠다’ 했지만 막상 닥치니 마음이 달라졌다.
아이는 엔지니어링은 전공하고 싶지 않단다. 자신이 생각해 놓은 학교와 전공이 있다며 가고 싶다고 했다. 학비가 UC계열의 두 배인 사립대학이었다. 그 동안의 작전?도 먹히지 않은 모양이었다.
부모의 의견과 아이의 생각은 무척 차이가 있었다. 학교를 정하고 등록하기까지의 한달 남짓 식구들 모두 갈등했다. 각자의 의견이 분분했지만 최종결정은 아이가 하도록 했다.
우리내외는 아이가 정 원한다면 아이의 생각대로 허락하겠다고 마음먹고 있었다.
심사숙고 끝에 아이가 결정을 했다. 제 딴엔 부모의 의견과 제 의견을 절충한 것으로 보였다.
집과 가까운 UC계열이 아니고 조금 먼 UC계열이여서 서운하긴 해도, 아이의 생각과 고민이 많이 포함된 결정이니 소중한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팔을 꿰어 옷을 입혔더니 첫 단추는 제가 끼운 셈이랄까? 첫 단추 채울 때 아빠와 엄마가 왜 그리 참견을 해 대었는지 나중엔 알게 되리라.
단추와 구멍이 있다고 해서 단추 꿰기가 식은 죽 먹기가 아니라는 걸 아이도 살아가며 깨닫게 될 것이다. 첫 단추를 잘 채워야 다음 단추를 쉬이 꿸 수 있고 인생도 그와 같기에 말이다.
‘단추를 채워보니 알겠다. 단추를 채우는 일이 단추만의 일이 아니라는 걸…
그래 그래 산다는 것은 옷에 매달린 단추의 구멍 찾아가기와 같은 것이야.’
내 마음과 꼭 같은 어느 시인의 시 한 구절이다.
이 정아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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