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추보다 매운 것은 한국 여자”
요즘 TV 광고에서 나오는 이 멘트를 들을 때마다 나는 강한 긍정을 보낸다. 그렇다. ‘맵다 못해 가끔은 무섭기까지 한 한국 여자들’을 우리는 많이 봐 왔다. 전쟁 후에 과부가 되어 사과 행상을 하며 ‘의사, 검사, 판사…’ 아들을 키워낸 장한 우리 어머니들의 이야기는 이젠 진부하기까지 하다.
얼마 전 신경통으로 병원에 입원하신 교회의 권사님께 심방을 다녀온 적이 있다. 그 분은 시종일관 내 손을 잡으신 채 이제까지 겪으신 삶의 여정을 진솔하게 털어놓으셨다. 남편을 먼저 보내고 혼자 몸으로 5자녀의 교육, 그리고 90세에 돌아가신 치매에 걸린 시부모님의 수발을 들며 얼마나 많이 남모르는 눈물을 흘리셨는지를… 그 분의 이야기를 들으며 또 한 분의 한국 어머니의 진한 맛을 느낄 수 있었다.
요즘은 어떤가? 한국에서는 버려진 노인들이 큰 사회복지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또한 요즘 젊은 층은 평균 5쌍 중 2쌍이 이혼을 서슴지 않는다고 한다. 농촌 주일학교가 성인 예배보다 더 성행한다 해서 무슨 소리인가 했더니, 이혼한 부모들이 자식을 시골 농촌의 부모님 집에 데려다 놓아서 아이들이 많아졌다는 얘기를 한 농촌교회 목사님이 해 주셨다. 이런 이야기들은 우리 가슴을 너무나 아프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한국 여자들의 이 매운 맛이 아직도 우리 한국 가정을 지키고 있음을 우리 교회에서 실시하는 ‘행복한 부부교실’을 마치는 날 절감할 수 있었다.
20년이 넘게 새벽에 일어나 남편이 신고 갈 양말, 벨트 등을 챙겨주어야 했다는 한 아내는 마지막 졸업식이 있던 날, 마지막 숙제인 ‘아내에게 주는 편지’를 쓰느라 방에서 나오지 않는 남편 때문에 늦어서 발을 동동 구르다 결국엔 화가 머리끝까지 나 졸업식에 못 올 뻔했단다. 그런 그녀가 남편이 읽어주는 편지에 그만 가슴이 다 녹아버렸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나의 무능함을 이야기할지라도, 나의 작은 성실함에 기뻐해 주고, 나의 온유함을 인정해 주는 당신에게 한없이 고맙소… 나는 천국에서 다시 결혼을 한다해도 아마 당신을 선택할 것이오…”
이 남편은 자신의 아내를 ‘거리의 남자를 가정 안으로 들어오게 한 사람’ 이라고 첫 날 소개했었다. 술과 친구를 무척이나 좋아하던 남편을 20년이 넘게 기다리고 믿어주었던 이 ‘한국 여자’의 강인함이 없었다면, 이 분을 ‘남편과 아버지’의 자리로 돌아오게 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았으리라 믿는다.
근육이 점점 더 마비되어 가는 병이 있음을 알면서도 남편과의 결혼을 결심하고, 아픈 남편과 예쁜 두 딸을 잘 키워내고 있는 아내 또한 우리의 한국 여자이기에 가능하리라. 그녀도 휠체어에 앉아 읽어주는 남편의 편지에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한국 TV 프로그램 중에 국군장병을 위한 위문 프로그램이 있었다. 프로그램 진행 중에 국군장병이 함께 “어머니…”하고 외치면, 한 어머니가 초대되어 나오던 장면이 있었는데 “어머니…”를 함께 외치던 그 씩씩한 군인아저씨들의 ‘울먹이는 얼굴들’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우리 한국 어머니들이 가슴속 깊이 남겨준 ‘감동’이 그 안에 있음을 보는 이도 함께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때로는 잔소리를 해대고, 억척같이 아이를 교육하며, 이민생활에서 경제적인 부담까지 함께 감당하는 우리네 한국 아내들은 누가 뭐라도 아직도 우리 가정을 지키는 장병들이리라.
나는 페미니스트도 아니고 여성 예찬론자도 아니다. 나 또한 남편의 작은 배려에 기뻐하고, 아직도 장난치다 남편에게 야단맞는 귀여운 아내에 불과하다. 그러나 쉽지만은 않았던 우리의 지난날을 회상하며 종종 나에게 고마워하는 남편은 혼자서 이렇게 중얼거리기도 한다. “저 여자 안에 어떻게 그런 면이 있지?” 난 오늘 대답해 주고 싶다.
“고추보다 매운 것은 한국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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