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은 미주 한인들에게는 각별한 의미가 있는 해다. 최초의 한인 이민선이 이 땅에 도착한 지 100년이 되는 해이기 때문이다. 사탕수수 밭의 따가운 햇볕과 움막의 어두움, 인종 차별과 가난 등 숱한 어려움을 이겨내며 한인사회는 이제 미 전역에서 200만을 헤아리는 커뮤니티로 성장했다. 오랜 세월 피땀 흘린 노력의 결실로 이제 한인 1세들은 탄탄한 사업 기반을 닦아 사회적 안정을 이뤄가고 있으며 2세들도 미 주류 사회로 뻗어나고 있다.
올해는 한국일보가 LA 한인 사회에 뿌리를 내린 지 34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미주 한인 이민사는 100년이 되었지만 LA 한인 사회가 시작된 것은 한국일보와 함께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LA 한인 사회는 지난 30여 년 동안 70년대의 불경기와 1992년의 폭동, 그리고 2001년 테러와의 전쟁 등 숱한 아픔을 겪었으나 길게 보면 발전을 거듭해왔다. 구멍가게나 다름없던 마켓과 식당 몇 개뿐이던 초창기와 미드 윌셔 가의 고층 빌딩 군 전체가 한인타운으로 변한 지금을 생각하면 그야말로 금석지감을 금할 수 없다.
지난 100년은 그러나 앞으로 다가올 도약의 시작에 불과하다. 부시 대통령은 한인 이민 100주년을 축하하면서 “한인 사회는 지난 100년 간 엄청난 발전을 이룩했지만 이는 앞으로 다가올 100년을 위한 준비에 불과하다”고 선언했다.
지난 수십 년 간 한인 이민자의 1차적 목표는 경제적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물질적 안정을 위해 주말도 없이 하루에 15시간씩 일하는 초인적 노력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 결과 이제 많은 한인 가정이 풍요로운 삶을 향유하고 있다. 수십 개의 빌딩 군을 거느린 투자 그룹이 나오는가 하면 하이텍으로 천만 장자 대열에 오른 사람도 하나 둘이 아니다.
그러나 좋은 차를 타고 좋은 집에서 사는 것만으로 우리가 미국에 온 목적을 달성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물질적 성공은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한 필요 조건이기는 하지만 충분 조건은 아니다. 다민족 사회인 미국에서 인정받고 살기 위해서는 우리보다 경제적으로 넉넉지 못한 타 소수민족을 돌아보고 베풀며 함께 어울리는 아량도 필요하다. 미국 사회가 처한 문제에 관심을 갖고 이 나라의 주인으로서 해야 할 일을 자진해 하는 것이 주류 사회로부터 대접받으며 어깨를 펴고 살 수 있는 길이다.
한인들은 마음만 먹으면 엄청난 일을 해낼 수 있는 저력을 갖춘 민족이다. 미국에서도 어떤 소수 민족보다 뛰어난 모범적인 이민자 그룹이 될 역량을 갖추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제 ‘우리’와 ‘나’, ‘돈’과 ‘안락’만을 추구하는 1차원적 자세를 탈피해야 한다.
미국을 ‘물질주의의 나라’로 이해하는 것은 그 껍질만 본 피상적인 인식이다. 한인 최초의 이민선보다 형편없이 작고 초라한 배를 타고 험난한 대서양을 건너 신대륙에 발을 디딘 미국인의 조상들 가운데는 경제적으로 ‘보다 나은 삶’을 찾아 온 사람도 있었지만 신천지에 이상향인 ‘언덕 위의 도시’를 건설하기 위해 안락한 삶을 뿌리친 이들도 있었다. ‘보다 나은 사회’를 건설하겠다는 이들의 소망은 지금까지 미국 발전의 원동력으로 남아 있다.
자유와 평등을 건국 이념으로 세워진 미국은 아직까지 ‘인류의 마지막이자 최고의 희망’이다. 이 땅에 발을 디딘 지 100년이 지난 한인들이 물질적인 탐닉만을 추구한다면 이는 ‘미국’의 진정한 의미를 저버리는 것이 된다.
가까이는 이웃 커뮤니티에 온정의 손길을 보내고 멀리는 미국의 발전을 위해 뭔가 기여하겠다는 데까지 생각의 폭을 넓혀 가는 것이 이민 2세기를 맞는 한인 사회의 자세가 되어야 할 것 같다. 한인 이민과 함께 해온 한국일보는 도약의 센테니얼을 맞아 한인 커뮤니티의 안내자와 봉사자로서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을 독자들에게 약속드리고자 한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