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10년도 넘은 오래 전 일이다. 내가 치과대학원에 입학원서를 내고 약 한시간 가량의 1대 1 면접을 보던 그 날, 대답하기 애매모호한 수많은 질문들이 오고가던 가운데 아직까지 생생하게 기억나는 질문이 하나있었다. 질문은 네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누구이냐였고 나의 대답은 일초의 주저 없이 나의 아버지였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아닌 우리 집에 계신 나의 아버지말이다. 기독교제단의 치대 입학면접으로썬 당연히 예수님 또는 열두제자중 한사람의 이름이 제대로 준비된 대답이였거늘 나의 반응은 이 질문만큼은 확실히 알고있다는 듯 아버지를 자신 있게 꼽았던 것이다.
미국에 처음 이민 온 사람의 직업은 그 사람을 공항에 마중 나온 사람의 직업을 따라간다고 한다나? 내 아버지가 제 2의 삶의 터전으로 이 미국 땅을 선택하고 23년 전 처음 발을 디뎠을 때 공항에 마중 나온 사람은 공교스럽게도 리커스토어를 하는 사람이었고 그렇게 시작한 아버지의 이민생활은 일년 365일 문닫을 날이 없는 리커스토어였다. 남들이 노는 공휴일은 오히려 대목인 날이라 나의 아버지는 23년동안 크리스마스를 비롯한 어느 하루도 온종일 가족과 함께 집에서 쉬어본 적이 없다. 가족여행은 상상도 못하는 일이고 매일저녁 그 다음날 새벽 가게문을 열기 위해 가족들을 뒤로하고 슬그머니 초저녁부터 잠자리에 들어가는 아버지를 볼 때마다 공항에 마중 나왔던 그 사람을 어렸을 적 나는 원망을 넘어 저주마저 하고 싶었던 때가 한 두번이 아니였다. 하지만 오히려 정작 지쳐있어야 할 나의 아버지는 가족들 앞에서 한 마디의 불평도 없었고 하루도 어김없이 묵묵히 아침해가 밝기도 전에 대문을 나서는 아버지의 뒷모습에서 나는 가장의 책임과 희생을 배웠다.
나의 아버지는 요즘 같으면 한참 비디오게임에 빠져있을 그런 어린 나이에 당신의 아버지, 곧 내 할아버지를 여의였단다. 부모의 품이 아직 그리울 어린 나이에 아버지는 전쟁이 휩쓸고 간 가난 속에서 온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요즘 말하는 청소년 가장이 되고 말았고 일찍부터 그의 어린 좁은 어깨에는 자의반 타의반 삶의 무거운 짐이 떠 얹어졌다. 그렇게 이르게 시작한 아버지의 희생은 오늘 이 순간까지 계속되고 있는 것이었다. 당신, 자신이 아버지의 품을 느껴보지 못해보고 성장해서 그랬을까? 권위적인 웃어른의 모습보단 오히려 나를 대해주는 아버지의 존재는 오랜 친한 친구의 모습에 더 가까웠다. 그런 나의 베스트 프렌드의 70번째 생일이 오늘이다. 내가 세상에 첫 신고식을 치뤘을 때 아버지의 나이가 지금 내 나이인데 항상 곁에 있었기에 감사할 줄 모르고 나 살기 바빠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다보니 내 친구는 벌써 70세가 다되었던 것이다. 내겐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 없는 아버지인데 다른 사람들에겐 이젠 흰머리의 할아버지로 변해버린 모습을 난 눈치채지도 못한 체 세월은 빠르게도 흘렀나보다.
작고 큰 언쟁과 오해도 물론 살면서 없지 않아 있었지만 겉으로 서로의 감정의 어긋남 뒤에는 마음속 깊은 곳 변함 없는 사랑과 믿음이 있었기에 나는 이순간에도 자랑스럽게 아버지를 내 베스트 프렌드라 부를 수 있다. 이제 두 아이의 아버지로써 내 아버지가 걸어온 그 길을 뒤쫒아 살아가면서 나는 내 친구를 그 어느때보다 존경한다. 단지 같은 하늘아래 살고 있다는 이유하나만으로도 내 인생의 등대가 되어주고 든든한 방파제가 되어준 나의 친구, 나의 아버지, 그리고 내 자식들에게 내가 나이 들어 할아버지가 되었을 때 어떠한 아버지의 모습으로 비춰져야할지 지침이 되어준 나의 친구, 나의 아버지에게 감사한다.
오늘은 나에게 소중한 내 친구의 생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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