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땅에서 가장 큰 전투가 벌어진 곳은 게티스버그다. 7만5,000명의 남군과 9만5,000명의 북군이 참가한 가운데 1963년 7월 1일부터 3일간 계속된 이 전투로 북군 2만2,000, 남군 2만 8,000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는 남북 전쟁 중 최대 규모일 뿐 아니라 남북 전쟁 이전 미국에서 일어난 모든 전쟁 사상자 수를 합친 것보다 많은 숫자다.
결과는 남군의 패배였다. 북군을 궤멸시킴으로써 전쟁의 승기를 잡으려던 리 장군의 전략은 이와 함께 물거품으로 사라졌다. 전쟁은 그 후 2년 가까이 계속됐지만 남군은 다시는 북부를 위협하지 못했다. 이 전투에서의 패배와 함께 남부의 운명은 결정됐다.
이 전투는 독립 선언서와 함께 ‘제2의 미 건국 문서’로 불리는 게티스버그 연설문을 낳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링컨 대통령은 이 싸움에서 산화한 장병들의 넋을 기리는 추모사에서 이들이 “자유의 새로운 탄생”과 “인민의, 인민에 의한, 인민의 정부가 지상에서 사라지지 않게 하기 위해” “자신의 전부를” 바쳤으며 이들의 유업을 완수하는 것이 살아남은 우리가 해야할 일임을 천명했다.
공교롭게 ‘오리지널 건국 문서’인 독립 선언서도 이보다 꼭 87년 전인 1776년 7월 2일 채택됐다. 제2차 대륙회의 회의 참석자들은 이틀 뒤인 7월 4일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창조되었으며 창조주로부터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부여받았고 그 중에는 생명과 자유와 행복 추구권이 포함돼 있다”는 내용이 담긴 이 문서에 서명했다. 여기 사인하면서 벤저민 프랭클린이 던진 “이제부터 우리는 힘을 합쳐야지(hang together) 그렇지 않으면 따로따로 교수형에 처해질 것(hanged separately)”이란 농담은 지금까지 유명하다. 혁명이 실패로 끝날 경우에는 주모자들은 반란죄로 사형에 처해질 것이 분명했다.
흥미로운 것은 역사적인 이 두 사건이 모두 7월에 일어난 것처럼 사건의 발단은 모두 4월에 시작됐다는 점이다. 미국 독립 전쟁이 발발한 것은 1775년 4월 19일 매사추세츠 렉싱턴과 콩코드에서 영국왕 조지 3세의 육군과 식민지 민병대 간의 사격전이 벌어지면서부터, 남북 전쟁이 시작된 것은 1861년 4월 12일 남부군이 사우스캐롤라이나 찰스턴 항의 연방 세관을 포격하면서부터다. 전쟁은 그 후 4년이 지난 1865년 4월 9일 버지니아 아포마톡스에서 리 장군이 그랜트 장군에게 항복하면서 끝났고 그 5일 뒤인 4월 14일 링컨은 암살됐다.
해마다 7월 4일이면 미국인들은 불꽃놀이와 바비큐로 하루를 보낸다. 요새는 미국인들처럼 독립기념일을 맞는 한인도 늘어난 것 같다. 즐겁게 먹고 마시는 것도 좋지만 이날 하루쯤은 게티스버그와 독립선언서의 의미를 되새겨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민경훈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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