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3학년 때인가, 조용하고 무더운 여름 방학. 하기 싫은 피아노 연습을 하고 있다. 매미소리가 어디선가 들린다. 아이들의 왁자지껄 노는 소리가 들린다. 칼싸움도 하고, 찜볼도 하고. 한창 신나게 놀고 있는 동네 친구들의 소리에 자꾸만 틀리는 피아노곡을 치다가 마지막 결심을 한다.
“어머니 나는 커서 피아노를 배우지 않았다고 절대로 부모님을 원망하지 않을 겁니다. 지금 이 시간에 나가 아이들과 노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피아노를 그만 배우게 해 주세요.” 3년 피아노를 배운 후, 처음으로 내가 정중하게 하는 청을 어머니는 받아들이고, 나는 피아노 레슨에서 해방되었다. 피아노에서 해방된 나는 신나게 깡통 차고, 찜볼하고, 칼싸움하면서 동네 아이들과 놀 수 있었던 것을 기억한다. 그러다 고등학교 1학년 때 피아노를 다시 치고 싶은 생각이 들어서 스스로 찾아가서 레슨을 받기 시작했으나 그 집에 있는 개가 나만 보면 사납게 짖어대는 바람에 가기가 싫어졌다.
또 선생님은 어찌나 성격이 까다로운지 2~3주씩 다음 곡으로 넘어가지 않았다. 석달을 적응하려고 노력하다가 결국 피아노에 대한 인연을 영원히 끊었다.
“저는 6년 동안 피아노 레슨을 받고 있어요. 특별히 잘 치는 곡도 없고 별로 좋아하지도 않지만 부모님이 강요하므로 싫어도 어쩔 수 없이 하고 있어요.”
“우리 아이를 피아노 시킨 지 7년은 넘은 것 같은데 나는 별로 흥미가 없는데 애 엄마가 하도 피아노를 가르치려 하니까 시켜요. 내가 봐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고 계속시켜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피아노 선생님이 조금만 틀려도 대자로 마구 때려요. 그래도 피아노 그만 둔다면 어머니가 화내실 테니까 그냥 해요.”
(어머니의 말) “글쎄 하기 싫다고 하는 것을 시킨 것이 한 3년 되네요. 아이들이 자랄 때 하기 싫은 것도 참고 하는 힘을 길러줘야 할 것 같아서 시켜왔어요. 그런데 결국은 싫다하니 내가 잘못했나 싶기도 하네요.”
“전공으로 피아노를 하고, 대학원 유학까지 마쳤지만 연주자의 꿈은 접어야겠어요. 부모님께 실망을 드리는 것이 미안하지만, 고민 끝에 진로를 바꾸기로 했어요.”
상담을 하다 보면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피아노를 배우고 있거나 배우려고 시도한 적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자기가 사랑하며 정열적으로 피아노를 전공하는 사람의 연주를 듣던지 그 집중된 연주 모습을 보는 것은 감동적이며 그런 연주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존경과 부러움으로 보게 된다. 그러나 이 정도 수준에 오르려면 대단한 훈련과 노력이 필요하다.
피아노 레슨에 몇 년씩 돈과 시간을 쓰고 부모들은 운전하고 기다리는 정성을 보이지만, 성공하지 못하고 나쁜 추억만 갖게 되고 자신에게 실망하며, 부모도 실망시키고, 결국 부모와의 관계에도 나쁜 상처를 남기는 경우를 많이 접하게 된다.
이러한 경우들을 분석해 보면 부모가 못 이룬 소원을 이루기 위해 시작하는 경향이 많고, 무엇인가 자녀에게 잘 해주고 싶은 부모의 욕망이, 별로 흥미는 없지만 부모에 보답하려는 자녀의 마음과 합해져서 시작하게 된다. 그러나 많은 경우 결국은 흥미를 잃고 그만두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아마추어로, 취미로 할 것인지 아니면 직업적인 예술가의 길로 갈 것인지의 구별을 하지 않고 시작하기 때문에 오는 혼란이다. 또한 배우고 싶은 사람이 중도 하차하는 것에는 선생님의 교육방침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본다. 피아노를 지도하는 선생이 가장 크게 목표로 삼을 일은 학생으로 하여금 피아노를 좋아하게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정신과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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