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호프는 다섯 번이나 한국을 방문했었다.
그가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이야기하는 주한미군 위문공연 에피소드가 있다. 너무 놀랐다가 너무 감격한 웃지 못할 스토리다.
6.25때 그는 원산 상륙작전에서 미군을 위문하게 되어 있었는데 연락이 잘못되어 미군이 상륙하기도 전에 육로로 먼저 도착했다. 인민군이 나타날까봐 식은땀을 빼고 있는데 드디어 미 제1 해병사단이 상륙해 자신들을 보호하러 달려온 모양이다. 적지에서 미군을 만나니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는데 인솔자인 해병대위가 경례를 부치며 “저는 호프하우스 출신의 아무개입니다” 하더라는 것이다. ‘호프하우스’는 밥 호프가 운영하는 고아원 비슷한 젊은이의 집이다.
밥 호프는 자기 평생에 그때처럼 감격해 눈물을 흘린 적이 없다고 했다. 코미디언이 눈물을 보였으니 분명히 화제다. 그는 남을 위해 좋은 일을 하는 것이 얼마나 보람 있는가를 깊이 느꼈다고 한다.
밥 호프는 미국 연예계 용어로 ‘보더빌’(vaudeville) 출신이다. 보더빌이란 2류 클럽에서 노래도 하고, 춤도 추고, 코미디도 하는 팔방미인 연예인을 말한다. 그의 히트송이며 그가 무대에 등장할 때마다 시그널 뮤직으로 연주되는 ‘Thanks for the Memory’는 바로 보더빌 시절 즐겨 부르던 노래다. 그는 원래 댄서 출신이다. 영화나 TV에서 그가 춤추는 것을 보면 보통 수준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의 코미디는 촌철살인 스타일이다. 길게 떠들지 않는다. 한마디로 청중의 폭소를 유도한다. 밥 호프 데저트 클래식 골프대회에서 포드 대통령과 짝이 되어 플레이를 하다가 TV 카메라를 들이대면 “아, 오늘은 정말 게임이 잘 풀리네요, 공에 얻어맞은 사람도 없고…”라고 말하며 먼 하늘을 쳐다보는 식이다. 구경하는 갤러리를 맞추어 쓰러뜨린 적이 있는 포드 대통령을 빗댄 조크다. 그는 공화당 체질이지만 각을 세워 정치문제를 언급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민주 공화 양당 대통령과 모두 친할 수 있었다. 그의 쇼에는 항상 글래머 연예인들이 출연하는데 그가 나이보다 젊어 보인 것은 미녀들에 둘러싸여 지냈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단 리클처럼 남에게 무안을 주며 웃기는 코미디언도 있지만 밥 호프는 그러지 않는다.
서울에서 열린 밥 호프 환영디너에서 한 한국 여성이 그에게 다가가 춤을 추자고 하니까 익살스런 표정을 지으며 응하는 것을 보고 “신사로구나”하는 인상을 받은 적이 있다. 아주 어울리지 않는 분위기였는데 상대방의 체면을 살려주기 위해 노력하는 흔적이 역력했다.
12.12 직후 L문공부장관이 미국에 와 신문사 간부들을 디너에 초청, 한미관계 개선에 도움이 되는 아이디어가 있으면 말해 달라고 했다. 나는 그때 미국 국회의원만 한국에 불러들일 일이 아니라 밥 호프 같은 미국민의 존경을 받는 코미디언도 초청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했더니 “아니 코미디언이 무슨 힘을 쓰느냐”는 식의 대답이었다. 한국 관리들은 미국을 몰라도 정말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TV에 나와 한국에 관한 좋은 인상을 한마디만 언급해도 그 효과는 대단할 것이고 또 한국 PR도 자연스럽게 할 수 있을 텐데 말이다.
98년 여름 AP 통신이 미리 준비해 놓은 밥 호프 사망기사가 잘못 전해져 애리조나주의 스텀프 하원의원이 애도를 표시하고 전국에서 밥 호프 집에 조의를 표하는 전화가 걸려오는 소동이 일어난 적이 있다. 그 소식을 전해들은 밥 호프는 “뭐가 한참 잘못 되었네. 그럼 내가 지금 있는 곳이 천당인가”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는 살아생전 어디를 가도 사회자로부터 “미국민으로부터 가장 오래, 가장 많이, 그리고 가장 깊이 사랑 받는 사람”으로 소개되었었다. 그는 인기 있는 연예인이 아니라 존경받는 연예인이었다. 연예인이 국민의 존경을 받는다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 빠져나가는 만큼 힘든 법인데 그는 자기 분야에서 그것을 이루어낸 인물이다. 1세기에 한번 나타날까 말까하는 미 연예계의 보석이었던 것같다.
이철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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