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헌 회장의 자살은 미국 한인사회에도 커다란 충격을 준 사건이다. 미국 속담에 비즈니스와 정치는 섞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기업은 정치와 가까워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정 회장의 선친이 대선에 출마했을 때 현대라는 기업은 정치와 엉키는 입장이 되어버렸다. 대기업 중 현대는 정부의 도움이 많이 필요한 기업이다. 다시 말하면 정치의 도움이 필요한 기업이다. 그러한 기업의 총수가 정치판에 뛰어 들었으니 현대는 기업경영과 정치활동이라는 이율배반을 안고 가지 않을 수 없었다.
기업에 필요한 리더십과 정치적 리더십은 매우 다르다. 현대의 대북 사업은 정치적 목적과 기업의 이윤 추구가 합쳐진 작품이다. 합쳐질 수 없는 것들을 억지로 합친 것이니 비극의 씨가 이미 뿌려진 셈이다.
정 회장은 1세 재벌을 세습한 2세 재벌이다. 새로운 교육을 받고 경영수업을 받은 유능한 젊은 기업인이다. 한국에는 이러한 재벌 2세들이 많다. 그러나 2세 재벌은 능력이나 경험에서 1세들을 따라가기 힘들다. 그리고 이들이 맡은 기업은 규모나 내용이 매우 방대하다. 그래서 이들은 힘에 겨운 임무를 수행해야 하기 때문에 무리수를 쓰기 쉽다.
자격이 부족한 최고 경영자가 저지르는 가장 큰 잘못은 기업의 방향 설정이다. 현대와 같은 대기업은 적어도 3년 전에 방향 설정을 해야 3년 후에 성과를 기대할 수 있다. 여기에는 매우 냉철한 최고 경영자의 분석과 판단이 필요하다. 혹자는 유능한 간부나 고문이 이러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하나 이러한 일은 최고 경영자만이 할 수 있다. 그 이유는 미지수가 넘치는 미래에 대한 결정은 직관적이고 과감한 판단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정몽헌 회장이 위기에 처해서 자살을 택한 사실을 보고 우리는 2세 경영자들의 한계를 본다.
정 회장의 자살은 한국의 기업환경이 미국과 얼마나 다른가 하는 점을 느끼게 한다. 미국에서는 파산법의 보호로 인하여 기업의 실패가 기업주들의 사생활에 크게 영향을 주지 않는다. 개인의 인권이 최우선적으로 존중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는 매우 다르다. 기업의 실패에 대한 기업주의 책임이 무한대에 가깝기 때문에 기업 경영에 무리수가 따르게 마련이다.
정 회장이 관련된 대북자금 조작 같은 기업회계는 미국 기업에서는 상상도 못할 노릇이다. 미국 기업의 최고 경영자는 주주를 대표하는 이사회와 각종 외부감사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정 회장은 회사를 개인회사처럼 운영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많은 주주들의 신의를 저버렸고 순진한 직원들의 믿음을 외면했다. 최고 경영자가 법적으로 주주들에게서 위임받은 책임(fiduciary duty)을 다하지 못했다.
이번 사건을 보고 다시금 느끼는 바는 한국과 미국의 기업윤리에는 큰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한국에서는 그럴 듯한 목적이 있으면 그릇된 방법도 합리화된다. 예를 들면 관리나 정치인들이 뇌물을 받았을 때 검찰은 대가성이 있었느냐 여부를 문제삼는다. 왜 대가성을 따지는지 납득이 가지 않는다. 미국에서는 대가성이 있었느냐 없었느냐와 상관없이 뇌물을 받았으면 처벌을 받는다. 목적이 수단을 합리화하지 못하는 것이 법치국가의 원리이다. 김대중 정부가 부정 대출을 시키고 돈 세탁을 시켜서 김정일에게 뇌물을 준 조치가 햇볕정책이라는 대의명분으로 합리화 될 수 없다. 이러한 행동이 용납되면 법질서를 유지하기가 어렵다. 많은 범법행위가 합리화 될 수 있는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정몽헌 회장의 명복을 빌면서 그의 죽음에서 많은 사람들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기를 바란다.
벤자민 홍 나라은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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