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대통령은 지난 10일 테러와의 전쟁을 효율적으로 국내에서 싸우기 위하여 의회는 현재의 법률보다 더욱 강력한 법안을 통과시켜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소위 미합중국 애국법(USA Patriot Act)이라고 불리는 테러 방지법안이 미 의회에서 통과된 지 2년이 채 못 되었다.
처음부터 헌법에 보장된 인권을 침해하는 조항들, 특히 거류 외국인들의 인권에 대한 무신경한 침해 조항들로 인해 많은 논란이 있었던 이 법이 서둘러 쫓기다시피 통과된 후 법조계의 인사들은 340페이지가 넘는 본문의 작은 글자들에 함축되어 있는 의미들을 찬찬히 소화해 나감에 따라 심각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뚜렷하게 그 모든 조항들을 일관하고 있는 점은 행정부의 법 집행에 대해 사법부가 행사하는 감독권의 축소 내지 무력화이다. 예를 들어 애국법 214조는 진행 중인 수사에 관련이 있는 경우에는 전화 도청을 허용하고 있다.
이 법의 발효 이전에는 전화 도청은 범죄가 발생하고 있다는 개연적인 사유 또는 합리적인 의심의 근거를 판사에게 제시하고 판사가 이유 있음을 인정해야만 가능했었다.
이제는 수사에 관련이 있다는 것을 일방적으로 선언만 하면 가능하다. 판사는 관련 여부의 진위를 물어볼 권리를 가지지 아니 한다. 이에 더하여 이 조항은 이러한 도청을 외국 정부에 관계되는 범죄의 수사뿐만 아니라 모든 일반 범죄의 수사에도 가능하게 하고 있다.
전화 도청에 대한 예만 들었지만 이러한 형태로 압수, 수색, 감금, 추방 등의 절차에 있어서 일관되게 사법부의 감독 및 결정의 권리를 축소 또는 무력화함으로써 행정부의 권한을 대폭 강화하는 것이 애국법의 내용이라고 간단히 말을 하면 과히 틀린 얘기는 아니다.
미국 민권연맹(ACLU)을 필두로 하여 많은 단체와 개인들이 이 법의 심각한 인권 침해를 헌법 위반으로 고발하여 소송을 제기하였고 현재 계류 중이다.
미 전국에 걸쳐 150곳이 넘는 지방 자치단체들이 이 법률의 폐기를 촉구하는 공식 결의를 주의회, 시의회 또는 지방의회에서 통과시켰다. 북가주의 아카타 같은 도시는 아예 연방정부가 미합중국 애국법에 의거하여 협조 요청을 해올 때 시 당국자가 그에 응하는 것을 범죄로 규정하는 조례를 시의회에서 통과시켰다.
그런데 이 시점에 와서 부시 대통령은 그것보다도 더 강력한 법을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9.11 이후 점차 악화되어 가고 있는 미국의 인권 상황에 대해 걱정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실로 할 말을 잃게 하는 처사이다. 부시 대통령은 테러 관련 수사에 있어서는 아예 판사의 영장 자체를 불필요하게 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유의해야 할 것은 이 주장이 기존 애국법의 유형을 따른다면 어떠한 사람이 테러 또는 테러 지원단체에 관련되어 있는지의 여부는 판사가 아니라 수사기관이 결정할 것이라는 점이다. 이는 미 헌법 수정 제 4조를 여지없이 사문화하는 것이다.
미국의 민주주의는 권력의 분립과 상호 견제에 기초한다. 부시 대통령은 취임이래 9.11 이전부터도 줄기차게 삼권분립의 원칙을 밀어 제치고 있다.
의회가 인준하여 미국의 법률로서 30여 년을 계속되어 오던 ABM조약의 일방적인 폐기, 테러리스트들을 행정부의 연장인 비밀 군사법정에서 재판하겠다는 결정 등, 이렇게 가다가는 어느 날엔가는 “모든 통치를 행정 명령으로 집행하겠다”거나 한국의 전 대통령들 마냥 “통치 행위는 사법 심사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말을 하지 않을까 겁이 난다.
김철회/법정 통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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