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여름 우리 모두는 축구로 인해 참 행복했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어떤 영화보다도 더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는 월드컵 경기의 순간순간들. 기억의 비디오테이프를 돌려본다.
스페인과의 8강전이 열리던 날 광주 월드컵 경기장의 4만3,000여 관중들은 물론 멀리 LA의 밤거리에 모였던 우리들도 숨소리를 죽이고 두 팀의 승부차기를 지켜봤다. 한국이 4대3으로 앞선 상황. 관중의 시선은 온통 한국의 마지막 키커인 홍명보(34)의 발끝에 모아졌다. 심판의 휘슬이 울리고 그가 달렸다. 오른발 슛! 골 망이 출렁였다. 대한민국이 스페인을 물리치고 아시아 국가 최초로 월드컵 4강 무대에 오른 순간. 얼굴 가득히 소년처럼 해맑은 웃음이 번지던 홍명보. 그는 두 팔을 가득 벌려 가슴 벅찬 승리의 감격을 표현했다.
팀의 주장이어서 유난히 맏형처럼 듬직하고 믿음이 가던 그가 가까이 있어 우리는 참 많이 기쁘다. 그가 오기 전까지는 미국에 축구팀이 있기나 한 건가 의문을 가질 정도로 생경하기만 하던 미국 프로 축구(MLS). 10개 팀이 리그를 펼치는 MLS는 갤럭시가 지난 6월, 카슨 지역에 홈구장인 홈디포 센터를 오픈함으로써 주류 스포츠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훈련환경, 과학적인 시스템 등 축구에 관한 체계적인 공부를 할 수 있고 언어 장애도 극복할 수 있는 기회라는 이유로 그는 태극 전사 후배들에게 적극적으로 MLS를 권하고 있다.
지난 4월 갤럭시 팀의 유니폼을 입고 콜롬비아 크루와의 개막전에 선발 출전, 팬들에게 첫선을
보인 홍명보는 팀의 중앙 수비수로서 팀의 승리를 견인하고 있다. 공격수만큼 빛나지는 않지만 골을 안먹는 것이 넣는 것 만큼 중요하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그의 위치는 결코 비중이 적지않다.
영원한 리베로 홍명보. 갤럭시의 수비진 붕괴로 경기 때마다 미드필더, 왼쪽 풀백, 최종 수비수 등 위치를 바꿔야 했던 것이 LA에서의 새 생활에 적응하는 것만큼이나 심신의 부담을 가져왔다고 그는 고백한다. 하지만 동포들의 뜨거운 환대가 있었기에 경기에 임하는 부담을 내려놓고 홈구장에서 경기를 펼치는 것처럼 여유를 부릴 수 있었다.
월드컵 국가 대표 선수로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그에게는 언제 지도자 수업을 받을 건지를 비롯해 앞날에 대한 수많은 질문이 쏟아진다. 하지만 그는 오직 현재에만 몰입할 줄 아는 진정한 프로다. 갤럭시의 선수가 된 이상 지난해 MLS의 우승컵을 차지한 팀의 2연패를 위해 열심히 뛰겠다는 그의 다부진 모습에 신뢰가 간다.
현지 훈련, 원정 경기가 잦은 그에게 있어 가끔씩 맞는 주말은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시간이다. 말 그대로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쉬는’시간은 훈련과 경기에 지친 그의 육체를 소생시킨다.
아름다운 아내(조수미)와 두 아들, 성민(5살), 정민(3살)군을 그는 재산 목록 1호로 꼽는다. 조금은 게으르게 맞는 주말 오전, 창문 사이로 비치는 햇살과 더불어 행복은 만져질 듯 가깝게 느껴진다. 축구 선수가 되고 싶다는 어린 시절의 꿈을 이룬 그는 주말 자신만의 시간이 날 때면 두 아들과 함께 공을 차기도 한다. 피는 못 속이는지 성민이와 정민이는 공차기를 아주 좋아한다. 가족과 함께 외식을 나가기도 하고 초보 수준이긴 하지만 골프도 치면서 그의 육체와 영혼은 새로운 한 주를 시작할 에너지로 충전된다.
<박지윤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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