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란기 연어가 물을 거슬러 고향을 찾아가듯 제게도 강렬한 귀소본능이 있는가 봅니다. 한국말은 점점 서툰데 갈수록 한국과 한식이 그립고 편안하니 말이죠.
이연이(32) 소니픽쳐 기획제작부 국제실장(Creative Executive, Local Language Production)은 지난 10월 부산영화제 참석 차 십여 년만에 찾은 한국의 분위기와 풍경이 눈에 삼삼히 밟힌다며 이렇게 말했다.
소니 기획제작부는 회장직속 7개 국내실과 1개 국제실로 이루어져 있으며 국제실장인 이 씨의 주 업무는 9개국 지부장이 추천하는 ‘로컬 냄새 물씬 풍기는’ 현지제작 영화를 엄선해 소니의 이름으로 배급하는 것. ‘와호장룡’(Crouching Tiger, Hidden Dragon)을 비롯한 중국, 일본, 독일, 스페인, 브라질, 영국, 멕시코 등 이 씨의 손을 거친 수많은 로컬 영화들에 이어 최근엔 한국영화에 집중적으로 관심을 쏟고 있다는 설명이다.
한국영화가 세계로 뻗어 나가는 덴 지금이 더 없이 좋은 때라고 힘주어 말한 이 씨는 홍콩영화는 이제 신물나고, 일본 작품은 할리웃 영화를 닮아 가는 추세라 동양 영화에 대한 할리웃의 관심은 한국의 독차지라며 이것이 조국에 대한 향수를 더욱 부추기는 이유라고 덧붙였다.
일의 성격상 잦은 해외 출장은 물론, 시차가 제 각각인 여러 나라를 상대로 일하다 보면 닷새 동안 한 잠 못 잔 적도 있다니 영화계 일이란 것이 겉보기처럼 재미있고 화려하기만 한 일은 아닌가 보다.
소수계 가운데서도 동양인, 더욱이 여성이면 ‘트리플 마이너리티’ 아닌가. 경쟁이 치열한 할리웃 에서 유일한 동양인 여성으로 기획제작부에서도 단 한 자리뿐인 국제실장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비결은 무얼까.
잠 안자고 몰아 부치는 강행군과 이를 뒷받침하는 체력이리라는 예상과 달리, 우리 남매에게 더 좋은 것, 더 나은 환경을 주시려는 마음 하나로 낯설고 물선 땅을 일부러 선택해 바치신 부모님의 젊음을 생각하면 피곤이 절로 달아나죠라고 답한 그녀의 눈가가 금새 감사의 눈물로 촉촉히 젖어든다.
이 씨는 3세 때 치과의사 아버지 이학명(61·은퇴) 씨의 유학을 따라와 여느 이민가정의 딸처럼 LA지역서 초·중·고·대학을 마친 토박이. 하지만 크레센타밸리 고교(90년 졸업) 최초의 동양계 여학생 학생회장을 지내기도 한 일찍부터 ‘될 성 부른 떡잎’이었다.
스탠포드대학으로부터 입학허가를 받았지만 의대로 직행하는 길임을 눈치채고 남가주에 남겠다고 우겼다는 이 씨는 UC어바인에 다니며 미라맥스 필름에서 인턴경험을 쌓는 것으로 영화계에 첫발을 들였다. 이 시절 좋게 받은 평가가 미라맥스 정식직원으로의 채용에 이어 결국 지난 해 소니로 스카웃 되는 데까지 결정적 역할을 한 것.
의사가 되기 바라셨던 부모님의 기대를 저버려 마음 한쪽이 늘 편치 않았지만 그래서 더욱 정진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이제는 부모님도 저의 길을 인정하시고 격려해 주십니다라며 채 마르지 않은 눈가에 활짝 미소짓는 이 여성이 기라성 같은 할리웃 소니픽쳐의 기획제작부 국제실장이란 것을 어찌 믿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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