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형직 <사회부>
’욕’은 인사와 함께 가장 빨리 배우게 되는 외국어다. 응축된 감정을 드러낼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기 때문에 배우는 것도 빠른 지 모른다.
며칠 전 아침, 타운 김스전기 앞에선 한인과 히스패닉이 시비가 붙었다.
그 히스패닉의 입에서는 한국 토종 욕이 거침없이 흘러나왔다. 이 일대가 한인들이 애용하는 타운 최대의 히스패닉 인력시장임을 감안하면, 그가 어떤 상황에서 이런 욕을 자연스럽게(?) 배웠는지 상상이 됐다.
아침마다 인력 충원을 위해 이 곳을 지나치는 한인 건축업자가 자신을 선택해주지 않은데 앙심을 품어 차에 커피를 뿌린 것이 발단이 된 작은 소동이었지만 한국어로 욕하는 히스패닉과, 이에 질세라 영어로 되받는 한인 사이에선 끝도 없는 증오만이 느껴졌다.
조금이라도 이문을 더 남기기 위해선 가장 싼 노동력을 최대한 이용해야 하는 한인과 불법체류자로서 육체노동밖에는 별달리 팔 게 없는 히스패닉들이 만나 형성된 인력시장은 저급 육체노동이 가난한 이민자들로 이전되는 현장이다.
노동력을 사고 파는 인력시장은 어느새 한인과 히스패닉이 서로가 서로를 잘 못 길들여 미움만을 키워나가는 ‘인간시장’이 되고 있다.
조금만 잘 해주면 일당을 올려달라고 하고, 게으름을 피기 십상이라는 한인들의 시각과 돈은 최대한 적게 주고, 비인간적으로 다루는 데다가 부려먹으려고만 한다는 히스패닉의 시각은 절대 겹쳐질 수 없는 평행선을 달린다.
서로에 대한 불신을 출발점으로 대화마저 잘 통하지 않는 상황에서 한인들은 그저 말 잘 듣고 힘 잘 쓰면 그만인 ‘인력’을 원하는 것이고, 히스패닉도 적당히 일하고도 대접받을 수 있는 마음 좋은 ‘봉’을 원하는 셈이다.
’코리안 드림’을 쫓아 한국에 왔다가 불법체류자로 전락해 업주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고 원망을 키우는 동남아시아와 조선족 노동자들과 한인타운의 ‘인간시장’에서 거래되며 한국어 욕을 먼저 배운 히스패닉의 모습이 자꾸만 머릿속에서 겹쳐진다.
노동의 질이 떨어지는 불법체류 타인종을 불법 고용할 수밖에 없는 ‘한인타운 인간시장’에 합법적이고 인간적인 관계를 원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런 관계가 이뤄지지 않으면 한인과 히스패닉은 서로가 서로를 신뢰할 수 없는 인간으로 길들여질 뿐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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