훗날 멀리서 2003년을 되돌아본다면 이라크 전쟁과 후세인의 몰락에 못지 않게 중요한 사건으로 동성애 운동이 기억될지도 모른다.
동성애를 사생활로 인정한 연방대법원 판결과 동성결혼 금지가 위헌이라고 선언한 매사추세츠 대법원 판결 등은 오는 2004년 대선을 앞두고 동성애 이슈를 선거쟁점으로 부각시킬 것으로 보인다.
동성애자가 아닌 90%에게는 자연의 이치에 어긋나는 것으로 보이지만 동성애 성향은 유전과 유아기 환경으로 결정되지 선택이 아니라는 것이 과학자들의 보편적 견해다. 그래서 컴퓨터를 발명한 수학자 앨런 튜링, 작곡가 차이코프스키 등 동성애로 갈등하다 자살한 위인들도 많이 있다.
성경이 동성애를 죄악으로 간주하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인 것 같다. 창세기에 묘사된 소돔과 고모라는 동성애 때문에 천벌을 받았다고 널리 해석되지만 확인된 사실은 아니다. 소돔을 방문한 천사들을 강간하려는 사악함 때문이 아니라고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또 모세의 율법은 동성간 성행위를 갖는 사람은 돌로 쳐 죽이라고 가르치고 있으나 당시는 이교도, 신성모독자, 간통자, 부모에 순종하지 않은 자녀, 순결을 잃은 처녀, 안식일(토요일)에 일한 자, 할례를 받지 않은 남성, 월경중인 여성과 성행위를 가진 사람, 무교절 동안 발효된 빵을 먹는 사람 등에게도 사형이 마땅하다고 여겨졌던 시대였다.
신약에서 사도 바울은 동성애를 명백하게 하나님의 뜻에 거역하는 행위로 규탄했다. 그러나 바리새인 출신으로 다른 제자들보다 엄격한 금욕주의를 강조한 사도 바울이 동성애를 예로 들었다고 해서 다른 욕망이나 죄악보다 특별히 가증스럽다고 할 수 있을까.
그러나 무엇보다도 주목할 것은 예수 그리스도 본인은 동성애에 대해 단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복음서를 총체적으로 읽으면 예수는 오히려 이웃, 특히 약자에 대한 죄악과 사회적 부조리에 가장 분노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당시 예수는 진정한 진보주의자였다.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 등을 읽으면 부자들이나 종교 지도자들보다 차라리 동성애자들이 구원받기 쉽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기독교가 전통을 고수하기 위해서는 정치적으로 보수적이 되는 것이 불가피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예수의 근본적인 가르침이 잊혀질 때에는 사도 바울이 신약에서 노예제도를 인정한 것을 구실로 남부 침례교가 노예제도를 끝까지 고수했던 것처럼 역사적 과오가 있었다.
성탄절을 맞아 이웃을 사랑하고 용서하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되새겨본다.
우 정 아<국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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