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라크는 전쟁이 끝났다고 하지만 사담 후세인 지지 세력들이 자폭 테러를 벌이는가 하면 미국의 종전 선언 이후 오히려 미군 사망자 수가 늘어나는 등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상황이다. 본격 전쟁 당시와 종전 이후 이라크 국내 정황 등을 휴가차 일시 귀국한 이태현 상병을 통해 알아본다.<편집자 주>
■ 사막에서 눈앞에 보이는 컵라면이 너무나 먹고 싶은데 당장 불이 없으면 어떻게 해야될까?문득 들어보면 수수께끼일 것 같지만 이라크의 전쟁터로 파병된 미 육군 소속 이태현(22·사진) 상병은 이와 같은 문제를 현실적인 차원에서 풀어야 했다.
물론 이라크가 사막인줄은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 더울 줄은 몰랐습니다. 낮에 기온이 화씨 160도를 넘더군요. 부모님이 보내주신 컵라면을 먹으려고 했는데 불이 없어 난감했습니다. 물통을 땡볕에 3∼4시간 두니까 끓지는 않았지만 아주 뜨거워집디다. 그렇게 몇 시간을 기다려 먹는 라면은 정말 그 어느 음식과 비교할 수 없이 맛있었습니다.
■이 상병은 미 텍사스주 포트 후드에 기지를 두고 있는 미 육군 산하 46 케미칼 컴패니 소속이다. 케미칼 컴패니의 임무는 전쟁 발발시 장갑차 부대와 함께 적군의 시야를 교란하는 것이다.화씨 100도가 넘는 텍사스의 더위에 익숙한 이 상병이었지만 160도가 넘는 이라크 사막의 폭염은 견디기가 무척 힘들었단다.
땀이 줄줄 흐르는 소리가 정말로 들렸습니다. 거짓말 안하고 1.5 리터 통안에 있는 물이 10분마다 바닥이 났습니다.지난해 9월 입대한 이 상병은 이라크 파병 소식을 지난 2월 접했다.우리 부대가 파병된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죽음에 대한 두려움 같은 건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다만 ‘왜 하필이면 무더운 사막일까’라는 생각은 들었습니다. 하지만 군대라는 곳이 내
가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안 하는 곳이 아니잖습니까? 나에게 내려진 명령이라고 받아들이고 마음을 굳게 먹었습니다.
폭염과 더불어 힘들었던 점은 모기와 모래 벼룩이었다.
모기도 더울 때는 나오지 않아요. 사막에서 해가 뜨기 직전, 또 해가 지기 직전 모기 수십마리가 달려드는데 방충망이 있어도 소용이 없더라구요. 아마 모기 때문에 못잔 수면 시간을 계산하면 수십시간은 나올겁니다. 사막을 전진하면서 모래 벼룩으로 인해 온몸이 간지러웠을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습니다.
■목숨이 달린 전쟁터의 긴장감과 폭염, 모기 등으로 힘든 하루하루를 보냈지만 무엇보다 집에서 보내준 라면과 과자, 위문 편지가 이 상병에게 큰 힘이 됐다.
전쟁터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들은 같은 부대의 전우들이지만 혼자 있을 때 가족들 생각밖에 나지 않아요. 제가 지난 8개월간 부모님과 동생에게 보낸 편지가 아마 70통이 넘을걸요?가족과 함께 전화통화는 하지 않았냐고 묻자 가끔씩 전화통화도 했지만 한번 전화를 할려고 할 때마다 줄을 서서 2∼3시간씩 기다려야 한다고 대답한다.
이 상병은 부모님이 보내준 한국 과자를 전우들과 함께 나눠 먹었다.
미군 전우들에게 한국 과자라며 권했더니 어떤 과자는 잘 먹지만 어떤 과자는 안 먹더라구요. 특히 오징어 땅콩 과자는 이상한 냄새가 난다며 질색하더라구요.
■이 상병의 부친 이성남씨는 아들의 파병 소식을 접한 뒤 오히려 잘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털어놨다.
저의 형님이 월남전 참전 용사이셨습니다. 당시 형님께서 전쟁터에서 돌아오신 뒤 전과 달리 용맹과 늠름한 모습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솔직한 심정으로 태현이가 전쟁터에서 인생에 대해 조금이라도 배우고 왔으면 하는 바램이었습니다. 태현이의 안전은 하나님께서 지켜주실거라 믿었습니다.
이 상병의 모친 문금심씨는 전쟁전보다 오히려 전쟁이 끝나고 미군 사망자가 많이 발생하자 가슴이 조마조마 했다며 얼마전 구조된 제시카 린치 상병의 모습을 텔레비젼을 통해 보며 마치 내 자식을 보는 것 처럼 가슴이 아팠다라고 전했다.
■이 상병은 이라크에 주둔하면서 이라크 국민들이 처해있는 현실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있었다.이라크는 나라 전체 전력의 90%가 바그다드에 집중돼 있기 때문에 다른 지역에 사는 이라크 국민들은 미국에서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힘든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전기도 없고 먹을 것도 제대로 없어요.
■이 상병에 따르면 이라크 국민들은 대부분 미군들에 대해 우호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들이 미군을 반겨주는걸 보면 사담 후세인으로부터 얼마나 많은 핍박을 받았는지 짐작이 갔습니다. 아이들에게 사탕을 줬는데 마치 제가 구세주인 마냥 기뻐하더라구요. 그 모습을 보면서 정말 저는 복 받은 환경속에서 자라났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라크 경우, 국가 전체 전력의 90%가 바그다드에 집중돼 있기 때문에 다른 지역에서 해가 떨어지면 암흑을 방불케 한다. 바그다드에서 떨어진 곳에 밤에는 미군 헌병의 모습만 보이고 주민들은 거의 찾아보기 힘듭니다.
이 상병은 이라크 국민들은 전쟁이 끝나자 복구 작업이 하루빨리 되리라 믿고 있지만 전쟁이 난 국가의 복구작업이 어떻게 하루아침에 이뤄지겠느냐며 제 생각으로는 이라크가 정상화를 찾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에서 일고 있는 반미 및 반전 감정에 대해 이 상병은 지난해 장갑차 사고로 인해 미국에 대한 한국 국민들의 감정이 악화된 것 같다며 물론 SOFA 협정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지만 협정이 체결됐을 당시 한국측도 이에 동의하지 않았느냐고 말했다.
이 상병은 무조건 반미 감정을 외치는 것은 옳지 않다며 순간적인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최대한 객관적인 입장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 같다고 전했다.
■ 이 상병은 2주간의 휴가를 플러싱에서 보낸 뒤 오는 1월7일께 이라크로 돌아갈 계획이다.가족을 보니까 그동안의 긴장이 갑자기 풀리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다시 돌아가면 한국인의 자랑스런 집중력과 정신력으로 버티겠습니다.
<정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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