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강불식(自强不息) 스스로 힘쓰고 쉬지 아니한다.<산농 고영선>
징검다리
과(過)
내가
한 개의 돌이 되어
흐르는 물살 아래 몸을 누이면
딛고가는 백년 뒤에
딛고오는 또 백년
흐르는 물살이 아무리 거세어도
백년을 버무려 크게 자란
물위에 둥근달은 떠내려 보내지 못한다
산곡간(山谷間)에 흩어져 이루어놓은 여섯의 유민마을들
신병(神兵)을 거느리고 삼국을 통일한
유신(庾信)의 천심(天心)을 미리미리 가슴에 품고
백년 천년을 마디마디 손가락에 자세히 세며
다리 놓아 돌다리
밟고 가는 징검다리
마을을 이어며 시간을 이어며
만추(晩秋)의 사역(使役)을 기도 삼으니
흐르는 물살이 아무리 거세어도
플러싱, 레오니아,
그리니치, 맨하탄의
달, 달, 밝은 달
백년의 둥근달은 떠내려 보내지 못한다
춘추(春秋)에 앞선 것이 생활이라
노적가리 찾아나선 새벽의 발 시린 골목길 사람들
응어리 모아모아 털어내는 새날 아침 한마당에
이슬 젖은 맑은 눈, 가배(嘉俳)로 회소(會蘇)하니
계백, 문덕이 갑옷을 벗고 웃는다
겉으로 표정은 장작같으나
불길을 저장한 따스한 민족
대륙의 물살이 아무리 거세어도
빛 밝아 따스한 둥근달은 떠내려 보내지 못한다
정재노릇 마다않던 백년전 가난
이슬치에 아침 이슬 흠뻑 적시고
수수깡 큰키사이 숨어 울던 사내의 통곡
모래가 자갈 되고
자갈이 바위 되니
고생도 쌓이면 추억이고
추억도 쌓이면 역사가 된다
징검다리 돌 사이 물살이 아무리 거세어도
어제를 껴안고 보름달로 커가는
오늘의 밝은 달은 떠내려 보내지 못한다
현(現)
바치는 건 사대(事大)이나
섬기는 건
어울려 섞이려는 겸손의 의지다
지나가는 행인마다 손님으로 쳐다보며
어디선가 생각한 이데올로기로 부른다
새 공간을 점유하려는 성장에는
애처로운 서러움이 오히려 지팡이가 되고
미움이 되는 사랑니가 오히려
육자배기 가락에 익어가는
흥겨운 꽃잎의 붉은 동백이 된다
시간은 가도 남기는 그림자는
계획에서 계획되는 기하학의 무늬들
겹겹의 꽃잎이 하나 둘 지고서야
영그는 열매
술기운이 거두어간 찬 가슴 발길로 차며
미장원 그냥 지나 집으로 돌아가던
과수원집 막내딸의 길고도 무거운
작은 발걸음
“기다리고 있을테니 어서 오세요.”
미래를 바라보는 오늘의 밝은 미소가
바다가 가까운 허드슨 강가에서 나를 부른다
어제는 우리에게 민들레의 비행길이었지만
오늘은
백년을 가야 할 새 승객으로
맴씨 단정한 정장의 차림을 만인에게 보이며
해 뜨는 역사(驛舍)에 서 있다
골 깊은 어머니의 소리없던 말씀이
새롭게 새겨지는 새 아침
해가 뜨는 새 길에서
신비를 세우고 신발끈을 당긴다
모순이
반란으로 제자리를 물러나는 날
탐하던 자본은
우리 것이 되겠지
미(未)
초대된 방에 앉아
토하던 각혈은 병이 아니었다
대륙을 품어 안고
환하던 외길에서 발광하던 오만과
모양없이 터지는 근거불명의 명예가
타락이었다고 치유되는
한모금의 말 일 뿐이다
할 말이 무엇일까
애초부터 정해진 운명은
너의 주인인데
미래에 남겨야 할 전율은 무엇일까
오늘의 우리가
이 시대 한쪽을 오려 살고
내일의 아들 딸이
저 시대 한쪽을 오려 살면
한 세기 두 세기 밟고 간
정정한 얼굴이 거기 있겠지
영남에서 떠나온 건장한 사람들아!
흩어진 경제의 병유리 조각들을 끌어모아라
죽창도 마다않던 대나무의 호남인들아!
감추어 두었던 죽통 속의 곱디고운 피리소리
씻은 손에 꺼내들고
길에 나서라
너와 내가
끊임없이 흐르는 물살 아래
한 개의 돌이 되어 몸을 누이면
딛고가는 백년뒤에
딛고오는 또 백년
전율로 기억되는 우리 얼굴이
꽃살 두꺼운 백합의 꽃으로
소리 가득한 미래를 흔들어 깨우며
너를 위하여
내리내리 피어 있으리
시인 김윤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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