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자랄수록 불평이 적어. 여기는 거기보다 모자라는 게 많고 열외로 버려진 것도 너무 많아. 그래도 내가 숨쉬고 살아있다는 것이 행복해.”
일주일에 두어 번 주고받는 친구와의 메일에는 ‘행복’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시카고에서 한국의 한 조그만 도시로 돌아가 살고 있는 그녀에게는 우리가 흔히 행복의 조건으로 말하는 돈도 명예도, 공부 잘하는 자식도, 사랑해주는 남편도 없다. 그런데 그녀에게는 늘 행복이 따라 다닌다. 이런 친구에게 나는 종달새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피천득의 수필 ‘조춘’ 중에서 내가 좋아하는 구절 “종달새는 조금 먹고도 창공을 솟아오르리니”에서처럼 그녀는 늘 활기차고 기쁘게 살기 때문이다.
그녀의 ‘행복’ 메일을 받기 시작하면서 행복의 조건이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부쩍 자주 하게 된 요즈음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 가는 삶의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접하게 되었다. 한국에서 사랑을 받고있는 KBS TV프로 ‘TV동화 행복한 세상’을 엮어놓은 책을 통해서였다. 5분의 짧은 애니메이션으로 방영된 실화들을 엮어놓은 이 책에 실린 한 편 한 편의 이야기들은 하나같이 동화 속에서나 일어날 수 있을 것 같은데 실화들이라고 한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라면’ 이야기에 나오는 한 아버지는 홀로 일곱 살 난 아들을 키우며 살고 있다. 하루는 출장 길에서 돌아오니 아이가 거실 소파에서 곤히 잠들어 있다. 잠에 취한 아이를 제 방에 눕힌 뒤 잠자리에 들던 그는 이불 밑에 들어있던 컵라면을 발로 차서 엎지른다.
장난을 친 아이에게 야단을 치며 아이의 엉덩이를 때린다. 아이는 말한다. 장난친 것 아니라고. 그건 아빠 저녁밥이라고. 며칠동안 못 본 아빠를 위해 일곱 살의 고사리 손으로 준비한 저녁인 것이다. 두 개를 끓여 하나는 아이가 먹고 아빠 것은 식을까봐 이불 밑에 넣어둔 것이라고 했다. 국물은 쏟아지고, 반쯤 남아 퉁퉁 불어터진 라면을 먹는 아버지. 여태껏 먹어보지 못한,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라면을 먹으며 행복하다.
‘엄마친구’에 나오는 한 음식점여주인은 두 동생을 데리고 들어와서는 자장면을 두 그릇만 시키는 누나를 유심히 지켜본다. 그들의 대화를 귀기울여 엿듣고 그 아이들이 고아라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아이들이 앉아있는 테이블로 가서 ‘내가 너희 엄마의 친구’라고 말하면서 아이들에게 반갑게 아는 척을 한다. 그리고는 자장면 세 그릇과 탕수육을 차려준다.
아이들이 다 먹은 후 말한다. 자장면 먹고 싶으면 언제든지 오라고. 의아해하는 주방장 남편이 진짜 저 아이들을 아느냐고 묻자 이렇게 대답한다. “사실은 나도 모르는 애들이에요. 그러나 엄마 아빠 없다고 무턱대고 주면 상처받을지도 모르잖아요”라고.
정초부터 신문과 방송의 헤드라인 뉴스들을 통해 우리가 보고 듣는 세상은 불행의 도가니에서 몸부림치고 있는 듯하다. 전쟁터에서는 젊은이들이 죽어가고, 강추위에 집 없는 이들이 다리 밑에서 얼어죽고, 많은 아이들이 먹을 것이 없어 배를 주리고... 세상은 막바지에 이른 듯 하고 인류는 증오의 무게에 짓눌려 압사해버릴 것만 같다.
그러나 이렇게 작고 여린 손들이 비밀리에 쏟아내는 사랑이 있는 한, 또 조금 먹고도 창공을 솟아오르는 종달새의 지저귐이 있는 한, 희망을 품고 살아 볼만한 세상이 아닌가. 마치 빙하가, 보기에는 아무 것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지만, 그것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오염된 공기가 정화되지 않아 이미 오래 전에 모든 생명이 사라지고 말았을 것이라는 학자들의 말처럼, 보이지 않는 이웃의 사소한 사랑의 행위가 세상을 정화시키고 행복하게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에서도 ‘마음이 가난한 것’을 행복의 여덟 가지 조건 중 첫 번 째로 들었나보다.
이 영옥/수필가·엔지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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