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회/ 법정 통역사>
얼마전 ‘복제 한국인’이라는 제목으로 한국 과학자들에 의한 인간 배아 복제 및 줄기 세포 추출 성공에 대한 논평을 읽었다. 인간 복제의 윤리성에 대한 고민이 너무 없어 보인다는 우려와 인간 장기를 생산하고 파는 세상이 과연 바람직한 곳인가라는 회의적인 논평이다.
인간 복제, 또는 심지어 그 가능성만으로도 심각한 윤리적, 종교적 내지 철학적인 고려와 검토가 있어야 한다는 데에 있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실제로 그러한 고민스러운 과정이 한국의 과학자들에게 없어 보인다고 단정해버리는 것은 지나치게 단순한 판단이라고 생각한다.
아마도 그러한 고민의 핵심은 배아 또는 태아가 언제부터 인간이냐는 질문에 달려 있다고 보아 무리가 없을 것이다. 칼럼의 필자는 임신중절 찬성론자들이 그 질문에 대해 딱 떨어진 대답을 못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러면 과연 임신중절 반대론자들은 거기에 대한 대답을 알고 있는가 묻고 싶다. 부시 대통령 등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은 수정의 순간부터라고 주저 없이 대답한다. 그러나 삶의 어려운 문제들이 그러하듯이 이 또한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우선 인간을 어떻게 정의하는가 라는 힘든 문제가 있다.
‘인간은 이성적인 존재’라는 고전적인 정의로부터 시작하여 ‘인간은 영혼을 가진 존재’라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정의, 또는 ‘인간은 만물 중 가장 맑은 존재’라는 성리학의 정의 등을 고려해 봐야 한다. 수정의 순간을 인간 탄생으로 고집하는 것은 가능성을 실재와 혼동하는 오류에 지나지 않는다.
만약 임신중절 반대론자의 논리를 따른다면 임신 촉진제 또는 체외 수정 등의 방법을 통하여 아이를 가지려고 애를 쓰는 수많은 부모들을 살인범으로 취급해야 한다(그 과정에서 수많은 수정란 실패가 발생함으로). 또 세계 각국의 임신 촉진 클리닉의 냉동 창고에 보관되어 있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수의 수정란들의 인권을 지금 당장 보호하여야만 할 것이다.
이번 연구에 관련된 한국 과학자들이 거친 조심스러운 과정들 (윤리위원회의 통제, 무보수로 난자를 기증한 자원 여성들의 동의, 엄격한 의미에서의 배아 형성 직전인 배반포-Blastocyst 단계에서의 중지 등)을 볼 때 그들이 심각한 고려와 검토 또는 고민을 하지 않았다고 단정하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이번의 성공은 한국 과학계의 첨단성을 세계에 증명한 쾌거이며 이 연구로부터 파생할 수많은 질병의 퇴치와 안전한 장기 이식의 가능성 등은 플레밍의 항생제 발견과 비견할 만큼 인류의 행복에 기여할 커다란 업적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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