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이민 오자마자 집부터 사서 내게 리모델링을 의뢰해온 안씨 부부로부터 일요일에는 무얼 하시느냐 교회라도 가시느냐는 물음에 우리 부부는 그냥 집에서 집안 밖을 치우고 청소를 하면서 보낸다고 대답했다. 사실은 우리가 다니는 교회가 분쟁이 끝났다가 또 새로운 분쟁이 똑같은 형태로 시끌시끌해서 잠시 다니지 않고 있다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돌아오는 이번 일요일에는 자기네 따라 절 구경 한번 가보지 않겠냐고 제의에 한인타운에 있는 절이냐고 물었더니 “아니다”라고 했다. 사막 끝에 있다고 했다. 그것도 한국식으로 잘 지어 놓은 절이라고 하기에 호기심에 함께 동행하기로 약속했다.
5번 북쪽 프리웨이를 올라가다가 14번 프리웨이를 진입하여 끝닿은 모하비 사막을 가로질러서 골짜기 삼각지점에 이르러 태고사라는 절까지 글렌데일에서 1시간40분만에 도착했다.
절터 입구에는 제법 아름드리 소나무까지 보이며 진입로 부근에 조경작업이 아직도 한창 중이었다. 대웅전 기둥 서까래 지붕기와는 동으로 만들어졌는데 모든 재료와 기술자까지도 한국에서 직접 불러와 건축했다고 하니 나의 모국이 새삼 자랑스럽게 가슴 뿌듯했다. 진하지도 않고 산뜻한 단청칠 색감 그 처마 끝 풍경소리까지도 아침바람에 청아하게 들렸다. 마치 한국 어느 절 한곳에 와 서 있는 기분 같았다.
사막지대였지만 계절상ㅡ으로 아직 이른봄이라기보다 춥고 골짜기에는 눈이 내린 흔적과 얼음까지 얼어 있었다. 절 위치 지형은 좌청룡 우백호 풍수지리까지 갖추어 살펴 기가 모이는 가장 센 곳에 위치하여 부처님을 좌불시켜 놓았다 한다. 절 뒤편으론 골짜기 따라 자그마한 폭포도 있으며 솔 나무가 양편으로 빽빽하게 우거져 있었다.
한국에서 청학 산악회를 이끌면서 명산 고찰을 두루 지나 다녔지만 예불 같은 것은 전혀 알지 못하고 그냥 쉼터로 잠시 지나치곤 했을 뿐이다. 오랫동안 교회에 다녔지만 끝내 편히 안주하지 못하고 경건치 못한 교회의 지금의 실상 앞에서 본의 아니게 처음으로 호기심 반반으로 부처 앞에 예불에 참석하는 기분은 몹시도 어색하고 마음 거북했다. 11시가 되자 대웅전 법당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들어와 모두 좌불 했다.
땅을 고르며 불도저를 몰던 사람이 승복을 입고 들어오셔서 목례를 나눈 파란 눈을 가진 유대계 미국인 무랑이셨다.
불경 책에 쓰여진 반야심경, 천수경동 30폐이지 분량의 한글을 글자 하나 안 틀리고 발음도 정확하게 때로는 높거나 낮은 음정으로 굿거리 장단에 맞추듯 시원한 목소리에 도취되어 어느덧 나도 처음이 아닌 것처럼 조금씩 따라 읊조려지게 되었다.
15분간 좌선시간, 두 눈을 감고 심란한 마음을 추스르며 무엇 때문에 노엽고 슬픈 것인지 그 근원을 더듬어보며 그 끝은 나 자신, 나의 업인 것을 모든 게 나 때문이리라… 살아가노라면 부딪고, 흐르고 흘러가며, 부딪는 인연으로 또 생겨나는 일들이 오죽 많으니 그것을 피할 수 없는 숙명으로 그것도 나 자신이라 생각했다.
덩그런 법당 많은 부처 속에 석가여래 갖가지 빛깔의 업, 그 속에나 그것은 생각, 생각을 담은 마음, 생각과 마음을 일으켜 내 마음속에 있는 미움과 원망 그리움을 담아놓는 것, 누가 무엇이 나를 잡고 늘어지는가, 나는 누구에게 어느 무엇에게 붙잡혀 있다는 말인가?를 생각했다.
점심공양이 끝나고 부처님 좌불 주변에 시들은 꽃들을 좀 내려 달라는 어떤 여자 보살님의 부탁으로 시들은 꽃들을 깨끗하게 걸레질까지 하게 된 우연한 한순간, 문득 때묻은 나의 스스로를 들여다 볼 수 있는 순연한 시간이었다. 전생의 업이 나를 대좌케한 나의 때의 무게를 헤아려 본다.
이상태
▲순수문학인 협회 회원
▲미주문협회원
▲재미수필가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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