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영라 (수필가)
영화의 완성도에 대한 기대감과 무척 충격적이란 평을 떠올리며 콩닥거리는 가슴으로 ‘그리스도의 수난’(The Passion of The Lord)을 보았다. 사순절이 시작되는 재의 수요일, 개봉 첫날 첫 상영을 극장 안을 가득 메운 이름 모를 관객들과 보았고 이틀 후엔 가족들과 함께 두 번째 관람을 했다.
그리고 다음날 저녁엔, 눈언저리와 코가 벌개져서 관람을 마치고 터벅터벅 걸어 나오던 교회 친구들과 저녁을 먹으며 영화에 대한 얘기들로 꽃을 피웠다. 몇몇은 울먹임이 멈춰지지 않아 식사를 제대로 할 수가 없었고 개중에 한 친구는 내 인생을 바꿀 영화라고 말하기도 했다.
지극히 대사를 아끼면서도 관객들에게서 최대한의 메시지 전달과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는 영화가 몇 편이나 될까?
전문가가 아닌 보통 사람의 눈으로 볼 때도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고 이해를 돕기 위한 영화 속 여러 장치들과 기법들이 돋보였다. 내용상으로도 성경을 얼마나 충실하게 사실적으로 묘사하려고 노력했는지 여실히 드러났다.
로마 군인들의 엽기적인 채찍이 몸을 후려칠 때마다 부들부들 떨리던 쇠사슬에 묶인 예수의 손과 입의 경련, 가시관이 이마의 연한 살을 뚫고 씌워질 때와 십자가에 못 박히는 고통을 생생히 느낄 수 있게 하던 처절한 신음소리, 진실로 자애롭게 들리던 음성과 표정으로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설교하던 예수 역을 맡았던 제임스 카비젤의 빛나던 연기는 실제인지 연기인지 분간이 안될 만큼 생생하고 깊이가 있었다. 마치 2000년 전 그 때의 현장 속에 있는 듯한 착각마저 불러 일으켰다.
영화가 개봉되기 한 달 전쯤에 친한 미국인 친구로부터 이메일 한 통을 받은 적이 있다. 영화와 관련된 일을 하고 있는 그 친구는, ‘그리스도의 수난’의 비공식적인 시사회에 참석했던 어느 인사가 보낸 편지를 혼자 간직하기 아까워 나를 비롯한 가까운 이들과 나누고자 한 것이다.
지금껏 내가 본 영화들 중 가장 아름답고 깊이 있으며 역사적으로나 성경적으로 정확하고 사실적이며 또한 충격적이었다. 영화가 끝난 후 몇 분 동안 우리 모두는 할 말을 잃은 채 꼼짝도 못하고 앉아 있었다. 왜 이 영화를 만들었느냐는 질문에 멜 깁슨은 하느님이 그에게 내 준 숙제라고 느껴왔으며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대답했다…
A4용지 두 장을 가득 메우는 편지를 읽는 동안 말할 수 없는 호기심이 나를 들쑤셨다. 진작에 멜 깁슨이 예수에 관한 영화를 만들고 있다는 건 알았지만, 그동안 그가 배우로서나 감독으로서 꽤 괜찮은 점수를 받고 있었다고는 하나 과연 제대로 우려낸 맛과 색깔을 담은 종교영화를 만들 수 있을 것인가에는 의문부호를 달고 있었던 게 사실이었다.
영화계의 철저한 따돌림과 반유대주의를 부추길 것이라는 우려와 비난을 비웃듯, 다른 어떤 상업영화와 견주어서도 전혀 손색이 없는 정말로 잘 만들어진 영화라는 호응이 지배적인 가운데 예수가 감당했던 고난과 누구도 흉내낼 수 없었던 사랑이 사람들의 가슴속에 변화의 불씨를 지피고 있는 듯하다. 내 주변의 유대인들 중에도 난생 처음으로 교회를 찾는 이가 있고, 불신자였던 남편이 참회의 기도를 자청하였다고 말하는 이가 있는 걸 보면. 오락적인 재미라고는 눈곱만큼도 없고 오히려 고통스러움에 몸을 떨어야 하는 영화 한 편이 사람들의 마음을 온통 뒤흔들어 놓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다.
처절하게 부서지고 수치를 당하면서도 십자가의 죽음을 감내함으로써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랑’을 보여준 예수의 선택, 그 ‘사랑’에 감화되고 변화되었던 고마움을 12년 동안 가슴 깊이 간직했던 멜 깁슨, 마침내 주연배우 제임스 카비젤과 함께 ‘왕따’ 당할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혼신의 힘을 다해 ‘그리스도의 수난’을 만들어낸 열정과 결단 있는 선택이 그저 눈물겹게 아름답고 고맙다. 그들의 선택은 정말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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