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이사 온 집에서 걸어서 갈만한 거리에 공원이 있고 그속 한 모퉁이에 아담한 테니스장도 있었다. 새벽에 우연히 잠이 깨어 나는 산보삼아 공원에 나가 보았다. 테니스장에는 새벽 테니스를 즐기려는 동네 사람들로 붐볐다. 은퇴한 미국 노인들도 더러 보이는 데 그들이 부러워 보였다. 새벽 공기를 마시며 땀 흘리는 노인들이 보기 좋았다. 나에게도 대학 다닐 때 정식으로 배우지는 못했지만 테니스가 무작정 좋았던 시절이 있었던 것이 생각났다. 지금이라도 당장 테니스를 다시 시작하고 싶은 충동이일어났다.
내가 쓰던 오래 된 라켓이 이삿짐에 항상 따라 다니던 것이 떠올랐다. 언제인가는 테니스를 다시 시작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으로 이리저리 이사 다닐 때마다 나는 그것을 소중한 것으로 다루었다. 대학을 졸업한 후에도 테니스만은 꼭 계속 하고 싶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그럴 수가 없었다. 이제 이런 기회를 맞고보니 테니스 라켓을 버리지 않은 게 잘 됐다 싶어 그것을 들고 나는 테니스장으로 나갔다.
내 라켓이 신기하다는 듯 쳐다보는 사람도 있어 왜 그런가 했더니 그것은 요즘에는 볼 수도 없는 고물형 라켓이라는 것을 알고는 약간은 황당한 기분이 되고 말았다. 내 것은 나무로 만들어진 것인데 비해 요즘은 누구나 금속으로 만든 라켓을 쓰고 있었다. 합금으로 만들어 진 라켓이 나무로 된 것보다 가벼워 다루기도 쉽게 공도 훨신 세게 나간다고 했다. 빠른 공에 더빠른 가속이 붙는다면 운동 부족으로 굳어져버린 내 다리는 그 공을 쫓으려다 가랭이가 찢어 질지도 모른다는 해괴한 걱정도 해보았다.
그러고보니 내가 테니스에서 멀어진지도 벌써 25년이나 되었다. 왜 그런지는 몰라도 그렇게 오랜 세월이 잠시 동안에 지나가버린 것 같은 착각을 일으켰다. 아무도 쓰지 않는 라켓을 들고 테니스장에 나타난 나는 그 긴 세월을 마치 도둑이라도 맞은 것처럼 서글픔을 느꼈다. 불현 듯 머리속에는 그동안 나는 무얼 했던가 하는 부질없는 생각이 스쳐갔다. 민망스러워 고개를 제치고 하늘을 올려다보니 새벽 하늘이 얼굴을 붉히고 있었다. 어느새 머리카락을 탈색 시키고 내가 간직한 라켓을 쓸모없는 고물로 만들어 버린 세월. 때가 지나면 아무리 소중해도 버려야 할 것이 라켓 뿐이겠는가.
강치범
▲ 남가주 치과대 졸업
▲창조문학 수필 신인상
▲미주 문협 수필 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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