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우리 조상들은 어찌 그렇게 지혜로우셨을까.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신다는 속담을 많이 들어 안다. 공짜라면 뭐든 먹는다는 정도로 생각했다. 먹으면 내게 해로운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게 공짜이기 때문에 꼭 갖고 싶은 인간의 심리를 아주 잘 표현한 속담이다.
미국이니까 발생할 수 있는 현상을 말하고 싶다. 합법적으로 미국에 정착하신 분들에게만 해당되는 일이다. 많은 사람들이 정부로부터 혜택을 받아 의료비가 공짜다. 아니 공짜가 되게끔 하라고 병원이나 약국에 종용을 한다. 개중엔 종용하기 전에 미리 공짜가 되도록 하겠다고 자원을 하기도 한다.
정말 공짜이기 때문에 가벼운 마음으로 약을 받으러 온 어떤 사람이 있다. 의사가 써준 약 처방이 열 세 가지다. 한 환자에게 한 번에 내린 처방이다. 이를테면 열 세 가지의 다른 병을 가진 환자인 셈이다. 골치 아프고, 배 아프고, 콧물 나오고, 열이 나고, 몸이 쑤시고... 등등.
약국에서 일하는 친구에게 안부 전화했다가 졸지에 상담자가 되었던 엊그제 일이다. 얼마나 기가 찼으면 의약계엔 문외한인 내게 뱉듯이 쏟아 놓을까 싶어 조용히 들어주기만 했다.
환자에게 증상대로 처방을 써 주는 의사를 탓하고 싶다. 또한 그 많은 약을 집에 가져다 뭘 할 것인지 환자에게 묻고도 싶다. 약이 뭔가? 말이 약이지 독약인 걸 모른단 말인가? 그 많은 종류의 약을 다 먹는다면 과연 몸이 견뎌낼까? 아니면 의료혜택 받지 못하는 이웃에게 나누어주기라도 할 것인가? 약 뿐이 아니다. 의료기구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저렇게 코드를 맞춰서 정부에서 돈만 타내면 된다는 식이다. 어쩌다 그 물건은 메디칼로 안 된다고 하면 딴 데서는 해 주는데 왜 여긴 안 되느냐며 어떻게 해보란다. 눈감고 야옹하면서 같이 도둑질하자는 거다. 나이가 젊어 아직 정부에서 그런 혜택을 받지 못하는 우리는 어떨까. 내가 능력 있어 돈을 벌고 내 힘으로 의료비를 지불하며 사니까 남들 하는 일에 눈살 찌프리고 공연히 의로운 척 참견을 하는 것일까.
만약 나도 그런 처지가 된다면 분명 공짜로 다 받아가려 할 것이 틀림없겠지? 그러지 말자. 정당하게 내게 주어진 부분만 감사하게 받으며 살았음 좋겠다.
처방 받은 그 많은 약 다 먹으면 분명 양잿물이다. 죽는거다. 왜 그걸 인정하지 않을까 매일 매일 살아가면서 우리가 하는 짓거리들이 모두 같다. 끝간데 없는 거짓말, 잠깐 눈속임으로 내게 돌아오는 이익챙기기. 이것들이 다 양잿물이 아니고 뭐란 말인가. 먹으면 죽는다. 자꾸 먹으면 더 빨리 죽는다.
다행이 우린 양심이란 고운 부분이 있어 편하게 남을 속일 순 없다. 그 모든 거짓말, 눈속임, 도둑질 후엔 내 몸에 흔적이 남는다. 이름 모를 병들이 슬그머니 자리하는 것이 바로 그 많은 속임수의 흔적일 수 도 있다. 그럼에도 우린 기를 쓰고 그 공짜를 쟁취하려 든다. 내가 죽을게. 다 내가 먹고 내가 죽겠다는 아우성이 시끄럽다.
공짜의 매력을 뿌리치기란 쉽지 않다. 그것이 곧 도둑질이란 생각을 하기 전까지는 그렇다. 그러나 그 공짜가 도둑질이 된다면 우린 다시 생각해야한다. 아무리 공짜가 좋다지만 내 목숨을 걸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우리네 조상이 말씀하셨으니 옛날 사람이나 지금 우리들이나 다 똑같은 마음을 가졌다. 공짜를 향한 내 마음을 분석하면서 목숨일랑 아끼자. 적어도 양잿물인지 아닌지는 구별하면서 마시자.
노기제
▲‘문학세계’ 수필 당선
▲‘한국수필’로 등단
▲제4회 재외동포재단 문학상 우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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