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윈스롭은 ‘첫번째 위대한 미국인’으로 불린다. 지금 매사추세츠 주 일대에 식민지를 건설하기 위해 조직된 ‘매사추세츠 만 회사’ 가 그에게 식민지 경영의 중책을 맡기자 그는 안락한 영국 전원 생활을 버리고 험한 신대륙에 건너온다.
그로 하여금 온갖 역경과 싸워 이기며 황무지를 개척하고 보스턴을 그 중심지로 키울 수 있게 한 것은 이곳을 인류의 모범이 되는 ‘언덕 위의 도시’로 만들겠다는 비전이었다. 그가 대서양을 지나며 쓴 일기에는 “온 세계의 눈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 우리가 하나님을 배신해 버림을 받으면 우리는 모두에게 교훈이 될 것”이라고 적혀 있다. 미국 역사의 바닥에 깔려 있는 도덕적 비전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윈스롭을 만나게 된다.
20세기 미 정치 지도자 중 그와 같은 확신을 가진 대표적 인물이 5일 작고한 로널드 레이건이다. 그는 미국은 ‘선한 힘’이며 가진 힘을 선의 구현에 써야할 의무가 있다고 믿었다. 이처럼 단순한 그의 비전은 전 세계 지식인들의 조롱거리였다. 헨리 키신저는 “저런 인물이 대통령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조차 이상하다”고 말했으며 민주당의 대부 클라크 클리포드는 “사람 좋은 바보”라고 평했다. “역사상 가장 아는 게 없는 대통령”이란 팁 오닐 연방 하원의장의 발언이나 “저런 바보를 대통령으로 갖고 있다는 것이 부끄럽다”는 니콜라스 호프만의 탄식은 지식인 계급의 일반적 평가였다.
그러나 이같은 식자층의 경멸과는 대조적으로 미국민들은 레이건을 사랑했다. 그가 ‘미국의 선함’과 낙관주의를 대표하는 인물임을 알아보았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공화당원은 물론 블루 칼라 민주당원들도 그에게 표를 던져 ‘레이건 민주당원’이란 말까지 생겨났다. 1984년 먼데일과의 선거에서 레이건은 50개 주 중 49개 주에서 승리했다.
레이건은 두 가지 업적을 이뤘다. 하나는 70년대의 고실업과 고 인플레에 시달리던 미국 경제를 번영시킨 일이고 다른 하나는 ‘악의 제국’ 소련을 멸망시켜 세계를 공산주의의 망령에서 해방시킨 것이다.
레이건이 취임한 후 가장 처음 착수한 일은 최고 70%에 달하던 소득세율을 28%로 낮춘 것이다. 번 돈을 많이 세금으로 가져가면 사람들은 일을 하지 않으며 사람들이 일을 하지 않으면 경제는 발전하지 않는다는 간단한 생각은 지금은 경제적 상식이 됐지만 당시만 해도 혁명적인 아이디어였다. 레이건이 낮춘 세율은 그 후 아버지 부시와 클린턴에 의해 소폭 인상됐음에도 아직 최고 35%로 그 근간은 흔들리지 않고 있다.
레이건의 또 다른 혁명적 사상은 공산주의 같이 인간의 자유를 억압하는 체제가 존재하는 한 세계 평화는 불가능하다는 생각이었다. ‘진보적 지식인’은 물론 보좌관들의 비판과 우려에도 불구, 그는 소련 체제를 무너뜨리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군비 경쟁이란 확신 아래 이를 강행했다. 그가 “고르바초프여, 베를린 장벽을 허물라”고 외쳤을 때 많은 사람들은 이를 공허한 수사로 여겼지만 그가 퇴임한 지 1년도 안 돼 베를린 돌담은 관광객의 기념품으로 전락 했다.
공산주의가 사라지고 시장 경제 체제가 대세인 현 시대를 사는 세계인은 모두 레이건의 그늘 밑에 있다. 따지고 보면 시장 경제와 민주주의, 공산주의에 대한 반대는 모두 자유에 대한 믿음이란 고리로 연결돼 있다. 경제적 자유에 바탕하지 않은 정치적 자유란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그의 두 업적은 결국 자유에 대한 인간의 갈망과 이를 실현하기 위해 만들어진 미국 체제에 대한 확신에 뿌리를 두고 있다.
역사에 흔적을 남기는 정치인은 확신 정치인이다. 여기서 이 말 하고 저기서 저 말 하는 지도자는 한 때의 박수는 받을 수 있을지 모르나 역사는 기억하지 않는다. 지난 주말 미국과 세계는 자유의 확산에 누구보다 큰 기여를 한 인물 하나를 잃었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민 경 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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