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씨는 한 때 한국에서 잘 나가던 엘리트였다. 서울 치대를 졸업하고 10년째 개업해 손님도 꽤 있었고 모교에 강사로 나갈 정도로 실력도 인정받고 있었다.
A씨의 비극이 시작된 것은 같은 대학 선배인 B씨의 유혹을 받고 미국으로 건너오면서부터였다. “좁은 한국에서 복작댈 것이 아니라 ‘기회의 땅’ 미국에 와 물질적으로도 풍요롭고 아이들 교육 걱정도 하지 말며 살자”는 선배의 거듭된 권유에 귀가 솔깃해진 A씨는 97년 보따리를 싸고 태평양을 건넜다.
처음에는 유학 비자로 USC에서 공부하며 미국 치과의 면허도 땄다. 면허를 얻은 후에는 약속대로 B씨가 자기 사무실에서 일하게 해 줘 취업 비자로 바꾸고 영주권 나올 날만 기다리며 새 삶을 어떻게 짤 것인가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그런데 처음부터 조금 이상한 구석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세금이나 메디칼 청구 등 돈이 관계되는 업무는 모두 A씨 이름으로 하자는 것이었다. 그래야 세금을 적게 낸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좀 꺼림칙하기는 했지만 체류 신분도 있고 거절할 처지가 아니라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한 동안은 비즈니스가 잘 돼 B씨는 호화 주택을 구입했고 친척들 이름으로도 여러 채 집을 사는가 하면 샌디에고에도 사무실을 낼 정도로 번창 가도를 달렸다. 언제까지나 잘 나갈 것 갔던 이들 앞길에 먹구름이 끼기 시작한 것은 99년 1월부터다. 샌디에고 사무실에서 치료를 받은 흑인 여성 고객 한 명이 이빨 5개를 고치겠다고 해놓고 10개 값을 청구했다며 이를 샌디에고 TV에 고발해 버린 것이다. 취재팀은 LA에 오피스까지 찾아와 진을 치고 이들을 기다렸고 이때부터 당국의 수사가 진행됐다.
설상가상으로 치과 비즈니스는 너무 벌린 탓인지 장사가 안 돼 A씨는 B씨와 결별하고 2001년 4월 파산 신청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후 한 달 뒤인 5월 아침 A씨는 느닷없이 집으로 들이닥친 경찰에 의해 연행돼 구치소에 수감됐다. 메디칼 중절도와 탈세가 죄목이었다.
금전 거래를 A씨 이름으로 돌려놓는 등 나름대로 신경을 썼던 B씨도 같은 날 메디칼 사기 혐의로 체포됐다. 자신이 이용당한 것을 뒤늦게 안 A씨는 B씨의 범법행위에 대한 검찰 수사에 적극 협조하는 대가로 감옥에 가는 것은 면하고 수십만 달러의 벌금과 1년 간의 족쇄형을 받는 것으로 그쳤다. 40만 달러의 보석금은 A씨의 억울한 사정을 들은 동창들이 모아 줘 간신히 감옥에서 나올 수 있었다.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미국 땅에 발을 디딘 A씨는 졸지에 파산자와 전과자로 전락해 버렸고 한때 ‘세리토스에서 제일 좋은 집’으로 불릴 정도로 고급 주택에 살던 B씨는 3년 간 철창 신세를 지게 됐다. 두 사람 사이의 우정이 산산 조각난 것은 물론이다.
한국의 경기와 교육 환경이 나빠지면서 어떻게든 미국에 오려는 사람이 급증하는 것과 비례해 취업을 미끼로 이들을 울리는 사례도 늘고 있다. 미국 사정에 어둡고 신분 때문에 발이 묶인 한국인들을 상대로 임금 착취와 사기, 범법 행위까지 시키는 경우가 빈발하고 있다는 것이 이민 관계자들 이야기다.
돈이 조금 있는 사람들은 E2 비자를 받기 위해 비즈니스를 사겠다고 덤비는 바람에 한인타운 비즈니스 가격은 천정부지로 올라가고 돈이 없는 사람은 비숙련 취업 비자를 받기 위해 막노동이라도 좋다며 닭, 오리 등 가축 가공 공장에까지 뛰어들고 있다.
요즘 한국에서는 돈이 있는 사람은 있는 사람대로, 없는 사람은 없는 사람대로 한국을 떠나려는 분위기가 만연돼 있다. 이들 탈 한국 희망자의 1순위 행선지는 미국이다. 국내 사정이 크게 바뀌지 않는 한 한국 탈출 행렬도 줄지 않을 것이고 이들을 먹이 감으로 노리는 온갖 사기꾼과 악덕 업주들의 횡포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부푼 꿈을 안고 미국 땅을 밟는 한국인들의 세심한 주의가 어느 때보다 요구되는 시점이다.
민 경 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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