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3학년 때 ‘김일성’이란 글이 적힌 종이모자를 쓰고 운동장에서 놀던 같은 반 아이가 교감 선생님에게 이 모습이 발각되어 교무실에서 회초리로 벌을 받은 적이 있다. 교실 뒤쪽에는 머리에 뿔이 난 ‘악마’ 공산당의 포스터가 붙어 있었으며 ‘멸공’ ‘무찌르자 공산당’이라는 푯말이 학교 지붕 위를 장악했다.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을 선생님에게 들으면서 분노의 눈물을 흘렸고 땅굴 사건 이후 ‘두더지 공산당’이라는 구호를 친구들과 함께 외쳤다. 간첩을 잡겠다고 동네 꼬마들과 뒷산을 뒤졌으며 길에 뿌려진 광고지를 ‘삐라’라며 선생님에게 신고하기도 했다. 그리고 중학교 1학년 때 미국으로 이민을 왔는데 그동안 북한에 대한 이미지는 크게 바뀌지 않았다.
지난 6월 북한 금강산 육로관광 개통을 취재하기 위해 처음으로 북한을 방문했다. 공산당원들도 만났다. 금강산 곳곳에 배치되어 관광객들의 질문에 대답도 해주는 북측 환경관리원들. 미국으로 치면 국립공원 ‘레인저’(ranger) 정도의 직책인데 사실 남측 관광객들의 행동과 북측 안내원들을 관리하는 공산당원들이다.
무뚝뚝할 것으로 예상됐던 이들은 매우 상냥하다. 인사도 쉽게 건네며 항상 웃는 얼굴로 안내를 해준다. 영어도 유창하게 구사하고 기자가 미국에서 왔다고 하니 오히려 각종 질문을 던져온다. “미국 대선은 어떤 방향으로 흐르고 있습니까? 북핵 6자 회담에 대해 미국에서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습니까?” 등 평소 크게 관심을 갖지 않고 있는 부분에 대해 질문을 쏟아 부어 약간은 곤란하게 만든다. 인간적이고 진취적이며 미국을 이해하려는 마음까지 있었다. 그 동안 생각해왔던 ‘공산당’과는 거리가 매우 먼 사람들이었다.
북한 주민들을 보면 더욱 그들이 우리와 같은 민족이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금강산으로 향하는 길목에 펼쳐지는 모심기가 한창인 들녘은 남한의 풍경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그 안에서 농사일을 하는 농부들의 모습은 매우 다르다. 농기계는 눈 씻고 찾아도 없고, 아무리 둘러봐도 낫, 곡괭이 등의 기본적인 농기구만이 사용될 뿐인데 간혹 눈에 띄는 황소가 농사에 동원되는 가장 큰 노동력이다. 어쩌다 보이는 트럭 등을 제외하고 도로에는 자동차가 보이지 않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보행이나 자전거를 이용해 어딘가로 부지런히 향하고 있다.
사람들의 차림새를 보거나 소달구지 또는 지게에 나무를 해서 지고 가는 모습 등을 보더라도 북쪽의 시골 풍경은 남한의 60년대 풍경을 떠올리게 한다. 그 가난한 모습에 마음 한켠이 짠해지고 평상시 북쪽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그다지 많지 않던 사람이라도 그들과 우리가 같은 민족임을 실감하게 된다.
언제가 다시 한번 분명 이 곳에 올 것이다. 물론 그 때는 북한과 ‘빨갱이’에 대해 전혀 모르는 코리안 아메리칸 2세인 우리 아이들이 동행할 것이다.
백 두 현 <특집 1부 차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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