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생활을 하면서 많이 생각하게 되는 단어 중 하나가 ‘관계’라는 말이다.
사람을 많이 만나는 기자라는 직업의 특성도 있고, LA한인사회가 한 두 다리만 건너면 거의 모든 사람이 연결돼 있는 작은 커뮤니티여서 그런 것 같다. 적절한 관계는 서로에게 득이 되지만, 지나친 밀착은 오히려 해가 될 수 있다.
기사를 쓸 때도 예외는 아니다. 특히 안 좋은 기사를 취재하거나 쓴 뒤에는 종종 이런 경험을 하게 된다. 어떻게 알았는지 ‘나 고등학교 선배인데...’, ‘우리 같은 교회 다니는데...’, ‘OO대학 나오셨다면서요...’ 같은 전화가 사방에서 걸려온다. 이런 경우 기자들은 흔히 ‘안면 받쳐서 못 쓰겠다’는 고민에 빠지게 된다. 좋은 기자라면 당연히 안면몰수하고 기사를 써야겠지만, 과도한 관계 때문에 붓끝이 무뎌지기도 한다.
최근 수입식품의 안전성에 대한 취재를 하던 중 식품업계 관계자들로부터 비슷한 고민을 전해들었다. 이들은 한국과 중국 등에서 수입하는 상당수 식품에 문제가 있는 것을 알고 있지만, 한인 수입상이 대부분 영세하기 때문에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고 밝혔다.
한 마켓 관계자는 “소비자의 건강을 생각하면 당연히 문제업체와 문제제품은 시장에서 없어져야 하지만 식품 업계는 워낙 좁아 가정 형편까지도 아는 사이이기 때문에 매몰차게 거래를 끊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한 식품수입업체 관계자도 “많은 노력과 자본을 투자해 한국 본사와 독점 관계를 맺은 뒤 제품을 수입해도 비공식 루트로 수입되는 제품이 너무 많아 공정한 경쟁이 어렵다”며 “비상식적 경쟁을 벌이다 보니 유통기한이 지난 제품 등이 공공연하게 판매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문제를 개선하고 싶어도 같은 이민자 처지인데다, 동창이나 동향 출신으로 엮이는 경우가 많아 말을 꺼내기가 쉽지 않다”며 “언젠가 큰 문제가 터져야 할 수 없이 고칠 것”이라고 고백했다.
하지만 상식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을 저해하는 이런 ‘밀착’ 관계는 지양해야 한다. 그 시작은 달콤하지만 끝은 파멸에 이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C플러스 사기사건’과 ‘김경준 게이트’ 같은 대형 사건을 포함한 한인사회 사기 피해자의 상당수가 잘 알고 있는 사람을 통해 직간접적으로 피해를 입는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좋은 관계는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하는 윤활유와 같지만, 부적절한 관계는 개인은 물론 결국 한인사회를 곪게 만드는 독소임을 잊지 말아야겠다.
이의헌 <경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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