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문호 괴테의 걸작 ‘파우스트’ 제2부에 인상 깊은 장면이 있다. 연인 그레첸에 이어 헬레네 마저 잃은 파우스트는 희곡 끝 부분에서 해변의 토지를 개간해 이상국가를 건설한다는 웅장한 계획을 세운다.
불모지 늪을 자유의 문명으로 변모시킨 파우스트는 그러나 한가지 난관에 부딪히는데 그리스 신화의 인물 필레몬과 바우시스 노부부의 오두막집이 한 가운데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는 것이다. 악마 메피스토펠레스는 파우스트를 기쁘게 하기 위해 초라한 오두막집을 불태워 버리는데 노부부의 죽음에 가책을 느낀 파우스트는 건설을 포기하고 나머지를 메피스토펠레스에게 맡긴다는 내용이다. 파우스트의 행위는 자유와 발전을 가져온 동시에 파괴를 가져온 것이다.
‘파우스트’는 시대에 따라 다양한 해석을 가져왔지만 한가지 분명한 소재는 발전과 보전의 마찰에서 갈등에 느낀 파우스트의 번뇌라고 할 수 있다.
올해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양극화된 미국 정치를 보면 이같은 파우스트의 번뇌가 그립다.
정치는 한마디로 진보와 보수적 가치관의 갈등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어쩌면 인류의 역사 자체도 수구세력과 변화를 추구하는 세력의 충돌로 설명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파우스트’를 사회적으로 해석한다면 주인공 파우스트의 번뇌는 18세기 독일에서 괴테가 경험한 현대화의 양면성을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괴테의 시대로부터 거의 200년이 지난 오늘날 미국 정치를 보면 문화 전쟁을 앞둔 분위기다. 지난 2000년 대선에서 조지 W. 부시 대통령을 찍은 보수적인 ‘빨간 주’들과 알 고어 전 부통령을 지지한 ‘파란 주’들로 나타난 분열은 이번 대선에서 줄기세포연구, 동성결혼, 낙태, 정교 분리 등의 이념적인 이슈까지 가세해 남북전쟁 이후 어느 때 보다도 갈라진 모습이다. 더욱이 최근 공화·민주 양당 사이에 오가는 수단을 가리지 않은 비방전을 보면 독선주의가 위험 수위에 달한 것이 아닌가 싶다. 특히 존 케리 후보의 베트남 무공을 둘러싼 논란에서 볼 수 있듯이 극단주의 앞에서는 진실 마저 해석하기 나름이다.
결국 파우스트는 죽기 직전에 그가 개척한 자유로운 땅에서 경쟁과 협력이 조화를 이루는 이상적인 사회의 비전을 보면서 일생동안 헛되이 찾아다녔던 환희의 순간을 마침내 경험하게 된다.
이번 대선에서 어느 정당이 승리하든지 정치 지도자들에게 ‘파우스트’를 한번 읽어보도록 권하고 싶다.
우 정 아 <국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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