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의 국수 맛
빌 클린턴이 자서전 ‘My Life’를 펴냈을 때 사서 읽어보고 싶은 충동은 있었지만 여태 그러지 못하고 있다. 언제 그 많은 페이지를 읽어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많기 때문이다.
대강 알고 있는 그의 삶의 이야기는 전형적인 미국적인 성공담이다. 출생부터 비극적 요소를 많이 지니고 있는 그가 조지타운, 옥스퍼드 대학, 예일 법대를 거쳐 아칸소 대학의 교수가 될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입지전적인 요소가 많다. 그러나 거기서 그치지 않고 31세에 주 검찰총장, 33세에 주지사가 된 후 드디어 미국의 제 42대 대통령이 된다.
그의 8년 간의 치적은 많은 사람들이 익히 아는지라 들먹거리고 싶지 않다. 그러나 그가 10대에 백악관 방문, 케네디 대통령을 만난 것은 대통령에로의 꿈을 키울 수 있었던 전기가 되었다는 것은 우리 젊은이들에게도 들려주고 싶은 일화다.
내가 아는 미국은 영웅들의 나라다. 영웅 만들기를 좋아하고 없으면 만들어내서라도 열광하게 한다. 언론들이 앞장서고 기념탑에 기념관들이 줄줄이 만들어지고 또 아이들의 손을 잡은 부모들은 성지 순례하듯 교육의 현장으로 찾아가는 것을 우리는 목격하고 있다.
여기서 한국과 미국의 정서적 차이를 보고 있다. 5천년 장구한 역사를 뒤돌아보면 200년 역사의 미국보다는 우리 나름대로 더욱 많은 영웅들이 숭앙을 받을 만도 한데 있는 영웅을 숭앙하기보다는 격하시키고 폄훼하고 역사에서 말살시키려는 행위도 서슴지 않는다.
1968년 여름 학생회를 맡고 있던 당시 한 달에 한 번씩 의대 진료반이 매월 판자촌 철거민들을 위한 진료 지원금 수령차 청와대를 방문, 육영수 여사를 만났다. 육여사는 이 자리를 통해 지원금을 주었다.
그런데 어느 날 육여사와 대화 도중이었는데 누군가 국수 사발을 들고 나오지 않는가. 원래 국수는 좋아했던지라 양은 모자라는 듯 했지만 더 달라 소리는 못했지만 참말이지 그렇게 맛있는 국수는 먹어본 적이 없다. 더 놀란 것은 그 다음이다. 대통령이 지금 집무실에 있는데 아무 스케줄이 없는 듯 하니 한번 만나보라지 않는가. 바로 옆방으로 안내를 받았다. 커다란 집무실 책상에 묻힌 듯이 앉아있던 대통령은 첫 인상이 시골 농부 같았다. 햇볕에 그을었는지 새까만 얼굴에 조그만 체구의 대통령은 절대 권력자의 모습은 아니었다.
동생이나 후배를 대하듯 특유의 카랑카랑한 목소리의 연설을 들을 때와는 달리 조용조용 이것저것 물어보더니 옆방으로 가 보자고 했다. 옆방에는 경부 고속도로 건설 현황 지도판이 있었다. 군대에서 지휘관 앞에서 브리핑하는 포인터를 쥐고 진척상황을 하나 하나 설명해 주지 않는가.
그 때 나는 생각했다. 설명도 설명이었지만 대통령이 일개 학생에게 선생님처럼 설명해주는 그 모습에서 대통령으로서의 고독을 보았던 것이다. 정쟁에서 권좌에서 얼마나 진솔한 대화에 굶주렸으면 그리도 열심히 지도판을 가리키면서 설명을 한단 말인가.
세월이 많이 흘렀다. 1961년 혁명 당시 국민소득 87달러에서 그나마 지금 1만 달러 시대에 살고 있다. 누가 뭐라 해도 내게 박정희 대통령은 영웅으로 각인되어 있다. 박 대통령의 고독한 모습과 청와대의 국수 맛은 죽는 날까지 잊지 않을 것이다.
방준재/내과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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