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 모든 것은 끝이 있지만 그중 후회가 많이 따르는 끝은 ‘부모님의 끝’이다. 후회는 우리의 착각과 상관이 있다. 부모님과 관련해 우리는 비논리적 착각들을 가지고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그분들은 항상 거기에 계시려니” 하는 착각이다.
그래서 직장 일로 바빠 찾아 뵙지 못하고, 아이들 뒷바라지하느라 관심을 쏟지 못하며, 집안 일에 치여 전화 한번 못 드려도, 부모님은 여전히 우리를 기다려 주시려니 하며 ‘끝’을 애써 의식하지 않는다.
‘끝’은 어느 예기치 못한 순간에 찾아들고, 착각으로 무심했던 우리의 가슴에는 후회와 아쉬움이 남는다.
지난 주 LA 한인 사회에서는 어느 80대 할머니가 맞은 삶의 끝, 저승길이 우울한 화제가 되었다. 노인 아파트에서 혼자 살다가, 혼자 죽음을 맞고, 시신이 되어서도 아들이 장례를 치러주지 않아 20일이 넘도록 무연고자 사체들에 섞여 방치된 비통한 종말이다.
“타인종 사회에서나 일어나는 일인 줄 알았는데 한인사회에서도 이제는 이런 일이 일어나는 구나” 하며 젊은 세대는 각기 나름대로 양심의 가책을 표현했고, 노인들은 남의 일 같지 않다며 분함과 심란함을 드러냈다.
그 노인의 가족사에 어떤 복잡한 사연들이 얽혀 있는지, 그 노인의 생애 중에 어떤 뼈아픈 감정의 응어리들이 맺혀있는지, 어머니의 죽음 앞에서 너무나 차분한 그 아들의 태도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우리는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이번 사건을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노인 아파트에서 혼자 사는 삶, 혼자 죽음을 맞을 수 있는 개연성, 자녀들이 평소 자주 찾지 않는 상황은 많은 노인들 공통의 현실이다.
LA 다운타운의 노인 아파트에서 역시 혼자 사는 염경숙 할머니(80)는 ‘죽음이 제일 큰 걱정’이라고 했다.
“그 소식 듣고 깜짝 놀랐어요. 하루하루 늙는 게 걱정이지요. 다른 게 걱정이 아니라 죽는 게 걱정입니다. 노인들이 모이면 모두 ‘죽을 때 어떻게 죽나’그것만 걱정해요”
6년전 취재를 통해 만난 그분은 미국에서 맞은 노년을 천당 혹은 극락 같은 삶이라며 즐거워했다. 나라에서 생활비 대주고, 아프면 병원에서 치료받게 해주니 이렇게 마음 편한 노후가 어디 있느냐고 그 할머니는 좋아했었다.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닌 것 같아요. 자식들이 너무 안심을 해서 오히려 부모 살아가는 걸 돌보지 않는 측면이 있어요”
노부모 부양책임을 면제받은 데서 오는 안심이 방심이 되고 또 무심으로 이어지는 정신적 해이에 대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많은 사람들은 ‘유죄’일 것이다.
고령화 사회가 되면서 노인문제는 전세계적으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더 이상 개인이 각자 알아서 감당할 문제로 내버려 둘 수가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사회가 담당할 몫이 있고, 개인이 담당해야 할 몫이 있다는 사실이다. 은퇴 노인의 기본적 의식주, 육신의 생계조건은 사회보장제도가 책임진다해도 그 마음의 쓸쓸함까지 맡지는 못한다. 노부모의 마음 돌보기는 자식의 몫, 우리의 몫 이다.
테레사 수녀가 생전에 영국의 한 고급 양로병원을 방문했을 때였다. 부유한 노인들이 호화스런 시설에서 빈틈없는 간호를 받는 병원이었는데, 이상하게도 노인들의 목이 모두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더라고 했다. 병원 직원에게 알아보니 원인은 ‘기다림’이었다.“누가 찾아오지 않을까”하고 모두 고개를 빼고 문 쪽만 바라봐서 생긴 현상이었다.
우리 부모님들의 목은 온전할까. 울리지 않는 전화, 열리지 않는 아파트 문만 바라보고 계시지는 않을까. 노부모의 마지막 남은 날들이 혼자 죽음을 맞을 걱정으로 채워지는 불효는 없어야 하겠다. 추수 끝난 들녘 같이 황량한 그들의 남은 날들에 봄꽃 같은 기쁨, 새소리 같은 반가움이 날아들게 했으면 좋겠다.
“마음이 울적할 때 저녁 강물 같은 벗 하나 있었으면/날이 저무는데 마음 산그리메처럼 어두워 올 때/내 그림자를 안고 조용히 흐르는 강물 같은 친구 하나 있었으면”<도종환 ‘다시 피는 꽃’중에서> - 노부모에게는 그런 벗이 필요하다.
권정희 논설위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